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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과 놀이 - 1.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4 조회수41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2.1.24 화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1567-1622) 기념일

 

사무 하6,12ㄴ-15.17-19 마르3,31-35

 

 

 

 





일과 놀이

 

 

 

 



음주가무(飮酒歌舞), 한국인의 신명나는 기질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길, 놀이를 좋아하는 한민족입니다.

그만큼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합니다.

놀이의 에너지는 곧바로 일의 에너지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과 놀이’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일과 놀이’라는 출판사도 있고 무수한 글도 실려 있었습니다.


옛 마을 공동체들은 일과 놀이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옛 시골 마을 공동체는 많은 민속놀이에 명절 때는

말 그대로 축제 놀이의 분위기였습니다.

흥겨운 농악이 있었고 아이들의 평소 놀이도 참 많았습니다.

50-60년대는 면 단위마다 있다시피 한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말 그대로 면민의 축제 놀이의 장과도 같았습니다.


일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말끔히 풀어주고 심신을 새롭게 충전해 주면서

마을공동체의 일치를 굳건히 해주는 놀이의 기능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마을 공동체와 더불어 일과 놀이도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여 날로 황량해져가는 마음에 점증하는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 강한 자, 잘난 자 못난 자, 병자와 건강한 자,

남녀노소 모두 더불어 어울려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란 진리를

요즘 수도공동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절감합니다.


고맙게도 일과 놀이의 요소를 잘 간직하고 있는 가톨릭교회공동체요

우리 분도수도공동체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모토가 일과 놀이의 조화와 균형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의 거룩한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노래방인 성전에서 거룩한 공동전례기도 놀이로

하루 일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며 심신을 충전하는 우리수도형제들입니다.

 


놀이에 대한 묵상을 한 계기는 어제 설날의 윷놀이에서 기인합니다.

수도원 설립 만 25주년 만에 처음 실행한 윷놀이였습니다.

이렇게 13명이란 많은 형제가 모이기도 처음입니다.

아침식사 전에는 설날 세배가 있었고

오후 1시부터 2시30분까지는 흥미진진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모든 형제가 참여하여 4팀으로 나눠 토너멘트로 행해졌고

1,2,3위 팀에는 두둑한 상금도 주어졌습니다.

새삼 공동체 놀이가 얼마나 공동체 일치에 기여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거룩한 놀이인 공동전례기도와

명절 때의 이런 윷놀이, 휴식시간의 공동놀이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역동적인 일치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도 ‘일과 놀이’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도 분명해집니다.


다윗은 일과 놀이의 대가요 소통과 공감의 달인임을 깨닫습니다.

진정 다윗은 신명의 사람이요 거룩한 전례 놀이의 사람입니다.

마치 오늘 1독서의 장면이 그대로 미사축제 놀이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예루살렘에 주님의 궤를 모시고 기뻐 뛰며 춤추는 다윗의 모습은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그대로 열렬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다윗은 아마포를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전례는 춤에서 완성됩니다.


시는 노래로 노래는 춤으로 될 때

몸과 마음은 유연해져 온전한 심신의 일치입니다.


어제 윷놀이 중에도 몇몇 신명 좋은 형제들은

저절로 손과 발과 몸을 들썩이며 춤추는 동작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마 다윗을 따라

모든 백성이 덩실덩실 춤을 춘 거룩한 축제 놀이였을 것입니다.

춤을 춘 후 다윗은 미사축제의 사제처럼

주님 앞에 번제물과 친교제물을 바치고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합니다.


이어 성체를 나눠주는 사제처럼 온 이스라엘 군중에게빵 과자 하나와

대추야자 과자 하나, 그리고 건포도 과자 한 뭉치씩을 나누어 줍니다.


그 뒤 백성은 저마다 집으로 갑니다.

그대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미사분위기입니다.

과연 다윗은 거룩한 축제놀이를 통한 소통과 공감의 달인이었습니다.

미있는 것이 독서 중 생략된 구절입니다.

 

‘주님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갈 때,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서 뛰며 춤추는 것을

사울의 딸이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비웃었다.’(2사무6.16).

 

모두가 다윗과 혼연일체가 되어 경신례를 거행하는데

사울의 딸만은 축제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방관자가 되어 다윗을 비웃습니다.

하여 미칼은

계약 궤의 경신례를 비웃은 벌로 다윗의 후손을 낳아 주지 못합니다.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 역시 일과 놀이의, 소통과 공감의 달인임을 봅니다.

예수님이 춤추었다는 복음의 기사는 없지만

‘먹보요 술꾼’이라는 별명을 보면 다윗처럼 때로 예수님도

제자들과 주님 앞에서 흥겹게 춤을 추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복음 장면도 그대로 미사축제분위기를 연상케 합니다.

 

혈연(血緣)의 가족은 밖에 있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신연(神緣)의 가족은

가까이에서 주님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참 가족은 주님을 중심으로 가까이 모인 이들임을 봅니다.

주님은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십니다.

바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두고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주님의 형제들과 누이들, 어머니들과 함께

거룩한 미사 축제 놀이에 참여한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 은총으로 일과 놀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참 좋은 당신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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