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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4 조회수842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월 23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 기념일




And looking around at those who sat there he said,
"Here are my mother and my brothers.
Whoever does the will of God is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to me."
(Mk.3,34-35)


제1독서 사무엘 하권 6,12ㄴ-15.17-19
복음 마르코 3,31-35

가르멜 수도원에 전설로 남아 있는 수도원장이 있습니다. 그는 니콜라스 헤르만(Nicholas Herman)으로, 161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전쟁과 여러 일을 전전하다 55세 때 수도원 평수사로 들어와 부엌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는 이 일이 너무나도 행복했답니다. 자신이 만든 식사를 수사들이 먹는 것을 바라보며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는 수사들을 섬기면서 갈수록 행복이 커졌습니다. 그는 작은 일도 큰 일로 생각했고, 접시 하나 닦는 것을 수만 군중에게 설교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20년을 변함없이 살자 함께 사는 수사들은 점차 그를 존경하게 되었고, 나중에 이 수도원에서 원장을 뽑을 때 원장 후보조차 될 수 없었던 평수사인 그가 원장에 뽑히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국왕 루이 12세가 수도원을 방문해 그에게 행복의 비결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지요.

“행복의 비결은 섬기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광의 자리를 찾아서 다닙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그렇게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그 자리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영광의 자리는 오히려 섬김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가장 겸손한 사랑을 간직하면서 섬기는 삶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진정 그것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요. 나무를 이해하려면 나무가 되어야 하고, 바위를 이해하려면 바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이해하려면 주님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니꼴라스 헤르만 수도원장처럼 섬김을 받는 삶이 아닌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처럼 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나의 기준에만 맞춰서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기준인 것처럼 착각에 빠져 살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 사람들이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이들을 기쁘게 맞이하러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뜻밖의 말씀을 하시지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는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하십니다.

우리들의 기준과 주님의 기준은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과연 어떤 기준을 따르고 있을까요?

이제는 주님처럼 살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뜻을 철저하게 실천하시는 그래서 가장 겸손한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이해할 수 있고, 우리 역시 주님의 진정한 형제자매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많이 하는 사람은 기도도 잘한다(새뮤엘 클러리리).


추워서 그럴까요? 공원에 아무도 없습니다.



실패자라고 해도 실망하지 마세요.
 

근육에 대한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운동을 하게 되면 근육이 붙는다고 하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운동을 하고 무거운 것을 들면 근육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육이 지치게 되고 수백 수천가닥의 근섬유가 찢어져서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운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 무거운 것을 더 이상 들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실패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태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8시간 정도 지나면 근육은 전보다 부피가 커지고 더 강해지고 단단해진다고 하지요. 결국 소위 식스팩이라는 소리를 듣는 좋고 멋있는 근육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근육이 계속해서 실패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고통과 시련 역시 이렇게 않을까요? 고통과 시련이 많을수록 실패자로 살아가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과 시련이 바로 내 몸과 마음을 더욱 더 단단하고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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