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만족하니 행복하구나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6 조회수721 추천수17 반대(0) 신고

취사시설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허베이 사범 대학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려면 하루 세 끼를 밖에서 사먹어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아직 말도 통하지 않는데다가 현지 음식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매번 어떤 음식이 좋을지 고민을 해야만 한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젊은 류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고는 방을 얻기 위해 부동산 사무실을 찾았다. 호떡집에 불이 나도 그렇게 시끄러울까. 부동산 사무실에서 이런 저런 조건에 맞는 방을 구하기 위해 한 시간 가량을 앉아 있었더니 귀가 윙윙 거릴 정도가 되었다. 귀도 좀 쉴 겸 류 선생님과 함께 밖에 나와서 조미료 맛이 확실하게 살아있어 국물이 끝내주는 (?) 우육면을 점심으로 먹었다. 다시 사무실에 돌아와서 방을 찾으려 앉아 있는데 배가 슬슬 아파 오면서 아주 급한 신호를 보내 왔다.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화장실 위치를 물어 달려갔다. ‘도대체 화장실이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것이야’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리며 건물을 한 바퀴 삥 돌아 반대편 입구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중국에 와 있구나. 구멍만 뽕뽕 뚫려있는 구식 ‘퍼세식’ 화장실 정면은 문이 없이 시원하게 확 트여 있는데다가 옆 칸과는 낮은 벽 하나로만 구분되어 있었다. 문 쪽 가까이에 있는 두 세 칸은 폭탄이 가득한 채로 방치되어 있어서 할 수 없이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화장실 안은 냄새와 소리에 무척 민감한 나로서는 도저히 참기 힘들 정도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할 수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막 일을 보고 있는데 하필 그 때 류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건에 맞는 집 하나를 찾았는데 가서 볼 의향이 있느냐는. 숨을 쉬기도 힘든 상황인데 전화까지 받고 앉아 있으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바로 그 때,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들어 내 오른 쪽을 쳐다보는 순간 내 오른 편에서 일을 보던 사람하고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아마 화장실에서 영어로 통화를 하고 있으니까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쭉 빼고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 2-3 초간을 그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 하고 있자니 세상에 이렇게 어색한 일이 또 있겠나 싶었다.

나 먼저 얼른 고개를 푹 숙이고 빨리 나갈 생각으로 내 일에만 집중을 하고 있는데 또 한 가지 큰일이 생겼다. 너무 급한 나머지 화장지를 안 챙겨서 온 것이다. 갑자기 너무 당황스러워져 화가 날 지경이 되었다. 도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한단 말인가. 숨도 제대로 쉴 수없는 화장실에 앉아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거의 잊고 지냈던 장면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략 십 여 년 전, 파푸아 뉴기니에서 호주 출신 배리 놉스 신부님과 함께 정글 속의 원주민 공소를 돌아다닐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동네마다 다 돌아다녀 봐도 화장실 비슷하게라도 생긴 곳 하나 찾을 수가 없어서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며칠을 어찌 어찌 참고 지내다가 결국 배리 신부님께 ‘아니, 어떻게 화장실 하나 없이 산데요? 자기들은 없이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 같이 자기들을 일부러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하나쯤은 만들어놔야 하는 거 아닌가요?’하면서 투덜거렸다. 그랬더니 배리 놉스 신부님이 내게 한 가지 충고를 해 주겠다면서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둔기로 머리를 한 대 두드려 맞은 얼얼함을 느꼈었다.

“스티븐! 선교사는 선교사 자신들을 위해서 이 사람들이 사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하거나 불평을 해서는 안 돼. 선교사는 먼저 이 사람들이 사는 환경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자신을 그 세상에 익숙한 사람으로 만들 필요가 있어. 자신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 그런 세월만큼 그들과 함께 살아간 다음에야 객관적인 시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꼭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가려낼 수가 있는 거지. 내 말 이해할 수 있겠어? 자, 이 사람들은 화장실 없어도 다들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잖아. 너도 잘 해결해봐. 다 방법이 있을 거라고. 하하하”

당신은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내 질문에 배리 신부님은 끝내 답변을 안 하고 웃음으로만 받아 넘기셨다. 결국 며칠 뒤 별의별 경험을 다 한 뒤에 나 역시 화장실이 없는 정글 속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아주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화장실 안에 냄새는 진동을 하고 옆 사람은 흘깃거리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화장지는 안 챙겨 온 이 상황에서 나는 그렇게 배리 신부님의 음성을 다시 듣고 앉아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일은 그렇게 배리 신부님의 음성을 다시 새기고 있자니 내가 처한 그 상황에 대해 더 이상 화가 나거나 불만스럽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 어쨌든 여기는 화장실이라도 있긴 있는 거니까 나은 거지. 그렇지?” 나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고 발등에 떨어진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을 한 결과 몇 분 뒤 류 선생님과 함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을 보러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신부고 대통령이고 서시西施같은 절세미인이건 간에 사람 사는 거 이렇게 혹은 저렇게 큰 차이 나 보인다 싶어도 사실은 다 거기서 거기다. 똑 같은 한 평생 살다 가는데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날까.

자기가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큰 힘이다. 똑같은 상황 아래서도 어떤 사람은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그 상황을 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그 상황을 오히려 즐기며 재밌어한다. 즐기면서 재밌게 지내다 보면 그만큼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불평이 많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와 함께 있든지 대체로 불평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못된다. 불평이 많은 것도 결국은 욕심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쉬이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불평만 느는 것이 아니겠는가.

낯선 경험들이 많은 중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마당에 일어난 화장실 체험 하나가 여러 가지로 나를 일깨워 준다. 자칫 내가 살아왔던 환경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채 불평만 늘어놓고 살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무슨 복을 이렇게 듬뿍 받으며 살고 있을까. 필요한 때 마다 꼭 필요한 것을 받는 이 복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나는 만족한다. 만족하니 행복하구나! 만족하니 어디든 천국이구나!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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