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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이는 어디로 갔을까?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7 조회수704 추천수17 반대(0) 신고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시장에 가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고 즐기는지를 잘 압니다. 시장에 가서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분위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인생의 수많은 단편들을 훔쳐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제로서 외국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한국에 머무를 때보다 더 자주 시장에 가서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중국에 머무르고 있을 때도 빨리 그곳의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자주 제 집 주위의 시장을 돌아다니곤 했지요.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길모퉁이에 좌판 몇 개 붙여놓고 채소나 돼지고기, 양고기, 생선 등을 파는 그야말로 조그만 규모의 노점상이라서 살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제게는 여느 큰 규모의 시장 못지않게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제법 두툼한 통나무 도마가 반쯤 닳아서 가운데가 깊이 파여 있을 정도이니 고기를 다루는 아저씨의 손놀림 역시 현란하기 이를 데 없어 그 아저씨가 발골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고 서 있어도 지루한 줄을 모릅니다. 살아있는 붕어나 잉어를 파는 아줌마는 씨름선수 같이 두꺼운 팔뚝으로 역시 그 팔뚝만큼 두꺼운 물고기들을 한 손에 콱 움켜쥐고 단 칼에 머리를 날려버리는 기술이 뛰어납니다. 그 아줌마 좌판 앞을 지나치다 보면 가끔 칼을 든 아줌마와 눈길이 마주치게도 되는데 그때 살짝 일어나는 짜릿한 긴장감이 그리 싫지 않았습니다. 온갖 향신료와 양념을 파는 가게 앞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마작판이 벌어집니다. 한 번도 물건을 파는 것을 못 봤는데도 도대체 장사는 안중에도 없고 마작패만 만지작거리는 그 아저씨와 아줌마가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지 궁금했습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기를 한참 하다보면 어느새 한,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아! 오늘은 채소가게에 들러서 채소를 좀 사가야지. 채소가게 아저씨는 정말 맘씨 좋게 생긴 촌부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절대로 풋고추 하나라도 덤으로 얹어주는 일이 없어서 역시 생긴 것과 하는 행동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만 매번 확인합니다. 느타리버섯은 넉넉하게 한 근 정도 사서 무슨 국이 됐든지 국마다 넣어먹어도 맛이 좋습니다. 풋고추는 일 위안(약 이백원)어치만 사도 스무 개가 넘습니다. 딱히 먹을 만한 게 없다 싶을 때는 흰 밥에 물을 말아서 된장에 푹 찍어먹는 풋고추가 제격이지요. 애호박 두 개 정도면 마늘 으깬 것과 소금 조금만 넣어 볶아 먹어도 이틀 정도 반찬으로 충분합니다. 오이가 빠졌습니다. 오이는 간식으로 사각사각 배어먹어도 좋고, 얼굴 마사지를 해도 좋고, 호박처럼 볶아서 먹어도 좋습니다. 그럼 오이도 큰 놈으로 두 개.

채소가게 아저씨가 주는 검정색 비닐 봉투에 제일 마지막으로 산 오이가 간당간당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불안해 보여서 아저씨에게 비닐 봉투 하나만 더 달라고 했더니 못들은 채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제 중국어 성조가 틀려서 못알아 들었을까? 맞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집에 거의 다 도착할 쯤 열쇠를 꺼내기 위해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면서 보니까 맨 위에 불안하게 담겨져 있는 오이 두 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봉투 하나 더 달라고 했던 건데 못들은 체를 해? 봉투 하나 얼마나 한다고.” 연신 투덜거리면서 오던 길을 돌아 다시 시장 채소 가게까지 갔는데도 제가 샀던 오이 두 개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오이 두 개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분명 들렸을 텐데 왜 못 들었을까요?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지금 사가고 있는 채소들로 무슨 요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오이 두 개가 땅에 떨어져 버려지고 있는 데도 저는 이 오이로 무슨 요리를 할지 고민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이가 없는데 어떤 오이 요리를 할 수 있을까요. 오이 요리는 오이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이미 물 건너 간 셈 인데 저는 오이를 잃고도 오이로 뭘 해 먹을까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잃고 사는 것이 참 많습니다. 살아가면서 놓치고 사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 잃어버리는 것들은, 그 놓치고 사는 것들은 그때에는 미쳐 잃어버리는지도, 놓치고 사는지도 모른 체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그것들이 다시 필요해 질 때가 오면 부랴부랴 먼지를 털어가며 찾아보지만, 이미 그것들은 암흑과도 같은 과거에 깊이 감춰져 있거나 연기와도 같은 미래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려 찾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연히 내 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조그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들의 영혼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이끌었던 많은 스승들이 지금 이 순간에 열중하는 일이 모든 존재의 근원과 미래를 동시에 내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정성을 들여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들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들의 곁에 있는 것들이 우리들의 과거이자 미래가 됩니다. 지금 우리들의 곁에 있는 것들을 정성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섬세한 손길로 쓰다듬지 않으면 우리는 곧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길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에 정성을 쏟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그것들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 자기의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응시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자신이 어떤 삶의 가치들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자기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관찰하면 됩니다. 그 사람들을 지켜보면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잘 살펴보면 자신이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결코 나 자신과 동일시 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내 모습을 투영시켜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정성스레 살펴보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특별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정성스레 바라보는 일은 더욱 소중합니다. 정성스레 바라보는 일이 꼭 그 사람들과의 빈번하고 긴밀한 인간적인 유대를 가져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정성스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응시하는 일은 그들의 마음을 느끼는 일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느끼는 일은 눈을 감아야 합니다. 눈을 감고 앉아서 상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상대의 마음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끔씩 상대방의 마음을 느끼기 위해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상대방을 위해 최고의 정성을 기울이는 행위가 됩니다. 언어와 행동은 마음에 비해 너무 과장도 많고 거짓도 많습니다. 과장도 없고 거짓도 없이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그런 친구들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요?

정신없이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씩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쳐가면서 까지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과연 그 일이 무엇인지도 한 번쯤 묻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가던 길을 과감히 멈추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그냥 멍하니 같은 하늘에 시선 맞추고 앉아서 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놀랍도록 단순하고 언제나 우리들 가까이에 있답니다. 명심하십시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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