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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유가 열리는 사람과 닫히는 사람의 식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7 조회수457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마르코 4, 33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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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이다고 나온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라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을 가리켜 비유이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상징에 대하여서도 한가지 더 알고자 한다.

상징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물을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냄. 또는 그렇게 나타낸 표지(標識)이다고 한다. 예를들면, 평화를 비둘기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겨지씨와 같다]라는 비유와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다]가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자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라고 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겨자씨에 대하여 얼마만큼의 해설을 덧붙일 수 있을까. 그리고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한다라고 하면 또한 어떻게 말할 수가 있을까. 성경에서는 비둘기를 성령의 상징으로도 표현되어져 오고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 안에는 여러 상징체계들이 있으며 예수님의 말씀에는 비유가 많이 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을 때, 지금 시대에서 논리적인 것들을 중시하는 '머리의 인간'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거의 대부분 설명을 하지 못한다. 자신의 머리로서는 인식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풀이를 할 수 없다. 인간의 개념으로 하늘 나라의 신비, 신앙의 신비들을 표현하기는 어려울 뿐만아니라 아예 이해하는 것조차 포기해 버리거나 더욱 나아가서 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비아냥거림의 냉소와 비난으로 가득 찬다.

세상 지혜와 인간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생명의 신비가 열리지 않고 닫혀지고 만다. 누군가에게 신비를 이야기했을 때, 그것에 대하여 조롱하거나 업신여기면서 상대에게 비아냥거리면 사실 '신비'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할 수 없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자들에겐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없어져 버린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신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계시)에 열려 있는 영혼들이다 할 수 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하고 일러 주시는 것을 보더라도 하느님의 계시(말씀)에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없는 신앙을 가진 영들은 언제나 자기 머리의 수준으로만 생각하고 인식할 수 밖에 없는 탓에 자신의 육적인 한계 안에서만 자기 영이 열려 있고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 말씀들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많이 받아들이며 여러 면으로 알아듣는 양들을 공격하는 게걸들린 이리 떼로 분명히 변질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풀이해 주는 것들을 들을 수 있는 복된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며 비난만 해 대는 영들에게는 말씀의 신비는 이내 닫혀 버리고 만다. 그러한 영들에게는 하늘의 보화를 주면 돼지 처럼 오히려 짓밟기만 하기에 생명의 신비는 닫혀져 버린다 하겠다. 의식이 아닌 숨겨진 무의식에서 믿음을 거스리며 가는 중이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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