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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비(神秘)’에 대한 묵상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7 조회수479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2.1.27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사무 하11,1-4ㄱㄷ. 5-10ㄱ.13-17 마르4,26-34

 

 

 

 







‘신비(神秘)’에 대한 묵상


 

 

 

 

오늘 묵상 중 길어 낸 주제는 ‘신비’입니다.

얼마 전 큰 회사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사 로고를 무엇으로 하면 좋겠느냐는 뜬금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즉시 떠오른 답입니다.

 


“놀랍다. 새롭다. 고맙다." 로 하십시오.” 대답했고 내심 흡족했습니다.

관상의 특징이자 신비에 대한 깨달음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감정이

놀라움, 새로움, 고마움입니다.

 


오늘 날 영성의 위기는 신비감각을 잃어간다는 데에 있습니다.

마음 무뎌져 신비 감각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황폐한 마음에 육적 욕망만의 거친 내면입니다.

 


칼 라너는 21세기 신자는 신비가가 되어야할 것이라 말하며

신비가의 시대를 꿈꿨습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바로 신비가로 창조되었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합니다.

 


잘 들여다보면 세상에 신비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신비, 믿음의 신비, 사랑의 신비, 생명의 신비, 죽음의 신비,

자연의 신비, 몸의 신비, 마음의 신비, 악의 신비…끝이 없습니다.


모르는 것 천지의 신비의 세계 안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신비를 깨달아 갈수록 신비의 원천인 하느님에 닿아

저절로 겸손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찬미와 감사입니다.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 보다

신비감각의 수련에 좋은 것은 없습니다.

 



오늘 저는 복음에서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묵상했고

독서에서는

다윗의 악행을 통해 ‘악의 신비’를 묵상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신비에 눈에 열리면 하느님 나라의 표징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은밀히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직관한 예수님이십니다.


때에 맞게 순리 따라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요

우리는 다만 놀라움과 새로움, 고마움에 열린 눈으로 지켜보고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하여 깨어 열린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달아 알 때

저절로 하느님 뜻에 따른 삶이 됩니다.

 


다윗을 통해 악의 신비에 전율하게 됩니다.

어떻게 주님의 궤를 앞에 두고 온 마음을 기쁨에 넘쳐 춤을 췄던 다윗이

이런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는지 참 불가사의입니다.

 

사람이 악의 유혹에 빠질 때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은밀한 중에 펼쳐지는 복음의 하느님 나라의 신비처럼,

어둠 속에 다윗을 통해 일사천리 펼쳐지는 악의 신비입니다.

 


다윗이 기쁨에 춤추던 장면이 빛이라면

오늘 독서에서 감쪽같은 계교로 무죄한 우리아를 죽게 하는 장면은

완전 어둠입니다.



빛과 어둠, 하느님 나라의 신비와 악의 신비를 사는 인간,

바로 이게 우리 사람입니다.



하여 깨어 내 삶의 역사를 부단히 렉시오 디비나하며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달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심하면 악의 유혹에 빠져 다윗처럼 악의 하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우리 모두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신비감각의 수련에,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는데

찬미와 감사의 미사전례나 시편 성무일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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