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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삶 - 1.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9 조회수50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2.1.29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신명18,15-20 1코린7,32-35 마르1,21ㄴ-28

 

 

 

 





아름다운 삶

 

 

 

 




만민의 보편 언어가 아름다움입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직관하는 아름다움입니다.

하느님은 아름다움 자체입니다.

 


하여 하느님의 신비를 거행하는 전례의 핵심 또한 아름다움입니다.

하느님을 닮아갈 때 아름다운 삶입니다.


1독서의 모세나 2독서의

바오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참 아름다운 분들입니다.


2독서의 마지막 구절이 참 좋습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7,35b)

 


품위(品位)라는 단어가 새삼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사전을 찾아 봤더니

‘사람이나 물건에서 느껴지는 좋은 인상’이라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어 떠오른 품격(品格), 격조(格調)요 모두

품위와 비슷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품위 있는 삶이, 격조 있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인위보다는 무위에 가까운 자연스러우면서 자유로운 삶입니다.


가끔 이런 아름다운 분들을 대할 때는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 전 어느 분으로부터 받은

독특한 선물인 '풀꽃‘이란 시 한편을 잊지 못합니다.

좋은 시를 복사하여 만나는 분들과 나누는 아름다운 분입니다.

 

 

 


-자세히 보면/예쁘다

 

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참 짧고도 쉬운, 그러나 깊은 여운을 남기는 시입니다.

저 역시 만나는 이마다 이 시를 소개하며 ‘너도 그렇다’ 하며

상대방을 가리키면 유쾌한 폭소를 터뜨리며 기분 좋아 합니다.

시 한 편이 분위기를 생명과 빛으로 가득 채우는 느낌입니다.



품위 있게,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래야 아름다운 삶입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매일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물론 들음 안에는 실천의 순종까지 내포되어 있습니다.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의심할 바 없이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믿었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주님의 새롭고 권위 있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길 때

치유와 변화요 아름다운 삶입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혼비백산 달아납니다.


바로 이게 주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주님 말씀의 위력을 체험하고 놀란 군중들의 반응입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듣고 배울 뿐 아니라 보고 배우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인한 치유와 변화를 눈으로 보고 체험하면서

깊어지는 믿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으니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주목되는 말마디가 놀라움입니다.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 주는 신선한 충격의 놀라움입니다.

무뎌진 영혼을 깨어있게 하고 매사 놀라움으로 대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이 참 적절합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영육의 건강과 아름다움에

주님의 말씀보다 더 좋은 양식은, 명약은 없습니다.

 

 

 

 





주님의 일에 전념하십시오.

 


이래야 아름다운 삶입니다.

주님을 향해 갈림 없는 통합된 삶입니다.

주님의 일에 마음을 모을 때 단순하고 순수한 본질적 삶입니다.


주님의 일, 세상의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말씀으로 새로워진 영혼들에게는 모두가 주님의 일입니다.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 바로 하느님의 일이 됩니다.

 


결혼하든 안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가가 문제입니다.


세상을 향해 있으면 세상 일이 되고

주님을 향해 있으면 주님의 일이 됩니다.


바오로의 염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이 길뿐입니다.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독신의 삶이 주님의 일을 행하는데 훨씬 쉬울 수 있을지 모르나

바오로 사도는 모두에게 독신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고유의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평생 화두로, 분별의 잣대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주님만을 생각하며

주님의 일에 전념할 때 아름다운 삶입니다.


삶이 바쁘고 복잡하고 힘든 것은 마음이 갈려있기 때문입니다.

갈린 틈 사이로 소리 없이 들어오는 어둠의 세력이 바로 더러운 영입니다.

주님의 일에 전념하는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영혼 안에는

결코 어둠의 더러운 영은 잠입할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삶의 균형을 잡으십시오.

 


주님 안에서 균형 잡힌 삶이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바로 기도와 일이 균형 잡힌 삶에서 기인함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밤마다 외딴 곳에서 기도로 영육을 충전하셨고

낮에는 온통 복음 선포와 치유의 일에 매진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권위의 원천은 기도임을 깨닫습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을 중심한 균형 잡힌 삶입니다.


더러운 영 들린 사람들 많은 작금의 세상입니다.

세상도 마음도 악마의 놀이터가 된 모습입니다.

빛이 사라지면 저절로 어둠이 들어오듯 기도가 빠진 불균형의 삶 그 자리에

소리 없이 잠입하는 더러운 어둠의 영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은 빛이신 주님 앞에 더 이상 숨어있을 수 없자

튀어나와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더러운 영 들린 사람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형제들의 충고에 순종하지 않고 반발하는 것 또한 더러운 영의 소행입니다.

 


더러운 영은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더러운 영에 들렸다는 것은 바로 내적분열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잊을 때, 기도를 소홀히 하여 세상일에 빠져 삶의 균형을 잃을 때

어김없이 스며드는 더러운 영인 마귀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도와 일의 균형 잡힌 삶보다

악령 퇴치에 좋은 삶의 처방도 없습니다.

 


영성생활은 습관입니다.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는 더러운 영입니다.


할 수 있는 한 기도와 일의 균형 잡힌 일과를 습관화 하여

주님의 일에 전념할 때 늘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삶입니다.

더러운 영은 저절로 달아납니다.

 

 

 

 


아름다운 품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목적입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을 때 아름다운 삶입니다.

 


늘 주님의 일에 전념할 때 아름다운 삶입니다.

 


늘 주님 안에 균형 잡힌 삶을 살 때 아름다운 삶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권위 있는 말씀과 사랑의 성체로

우리 안의 더러운 영들을 퇴치하시고 생명과 빛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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