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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어명이요!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9 조회수768 추천수11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연중 제4주일 - 어명이요!





 

제가 가장 힘이 솟고 팔팔할 때는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라면 이 때 누구와 싸워도 이길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도 싸움은 하지 않았지만 운동은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어디에도 그렇지만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도 싸움 잘하는 아이들의 패거리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저의 친구에게 이것저것 시키더니 나중에 그 친구의 등을 발로 찼습니다. 저는 참을 수 없어서 때리는 녀석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그 때리던 아이는 갑자기 놀라서 뒤로 자빠졌습니다.

창피해서 그랬는지 제가 자기를 때렸다고 하며 마구 흥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가 갑자기 제 얼굴을 때렸습니다. 그러나 마치 솜으로 맞은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회심의 일타를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저를 보더니 움찔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미칠 듯이 화를 내더니 교실 뒤로 가서 마대자루를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무기를 든 이유는 맨 손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맨손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무기를 들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비겁한 짓입니다. 저도 어떻게 대처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그 아이는 화만 내다가 말리는 아이들에게 못이기는 척하며 교실을 나가버렸습니다.

 

어떤 누구도 비겁한 폭력을 쓰는 자는 자신 안에 참된 권위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져가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폭력으로 얻은 권력은 그 힘이 떨어지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는 리비아 전체를 쥐고 살았던 카다피 일가가 몰락하는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최후 유언은 황금권총을 쥔 채 나이어린 병사 앞에서 애원하며 소리 질렀던 “쏘지 마!”란 말이었습니다.

칼로 승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칼로 얻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힘이 세어야 하는데 항상 그럴 수만은 없는 법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권력 자체를 쥐고 있었지만 측근 한 명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러니 평상시 얼마나 두려워하며 살아야 했겠습니까?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조문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 때 전두환 전 대통령도 추기경의 장례식에 왔었습니다. 한 사람은 유리관 안에 잠자듯 누워있고, 또 한 사람은 뒷짐을 지고 고인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깁니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 다른 권위를 추구해 왔습니다. 한 사람은 세상의 권위를, 다른 한 사람은 영적인 권위를 쫓았습니다.

둘의 악연은 12.12 때로부터 시작됩니다. 김 추기경은 쿠데타 성공 뒤 인사차 찾아온 전두환 당신 보안사령관(육군 소장)에게 “마치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다”며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냐”며 일갈했고 전 전 대통령은 얼굴이 굳어져 돌아갔다고 합니다.

서슬 퍼런 5공의 폭압 속에서도 김 추기경은 민주와 인권을 위해 정권과 맞섰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광주를 위한 특별기도회도 집전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런 추기경의 행보에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1987년 지금도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며 인구에 회자되는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을 때 김 추기경은 추모강론을 통해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냐”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김 추기경의 발언은 6.10 민주항쟁의 불씨가 되었고, 독재타도, 호헌철폐의 구호가 전국에 메아리쳤습니다.

이 때 명동성당은 경찰이 진입할 수 없는 신성지역이었고 진입하려는 경찰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내 뒤에는 신부들과 수녀들이 있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으니 나를 밟고 가라.”

이렇게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낳게 하였습니다.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기는 하였지만 둘 모두는 감옥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평생 눈의 가시였던 김 추기경을 바라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며 뒷짐을 지고 있었을까요? 과연 국민의 심판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하느님의 심판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실까요?

 

세상 권력을 쫓는 이들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눌러버리면 자신의 권위가 유지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폭력이 통하는 이들은 폭력을 쓰는 자들뿐입니다.

전엔 어떤 자매님이 기대가 많았던 딸이 결혼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실내화를 벗어서 얼굴을 때렸는데 결국 눈이 붓고 충혈 되어 겁을 잔뜩 집어먹었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머니로서 자녀를 복종시키고 싶은데 그래서 결국 사용하는 것이 폭력인 것입니다.

딸은 그저 맞아서 아파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님은 결국 딸의 결혼을 허락합니다. 폭력으로 꺾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왕에게 그의 동생 부인과 혼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헤로데는 그의 목을 치라고 명령합니다. 물론 그의 목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세례자 요한은 여전히 예언자의 권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위가 어디서 오는지 물어보는 이들에게 세례자 요한의 권위가 어디서 오는지 되묻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하였기에 하늘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사람들 대부분이 세례자 요한의 권위가 하늘에서부터 왔다고 믿었기에 아무 말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폭력으로 얻은 권위는 그 사람이 그 힘을 잃으면 곧 끝나지만 하늘로부터 오는 권위는 죽음이 와도 여전히 남습니다. 예수님은 이 권위를 교회에 물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짧고 보잘 것 없는 권위가 아닌 새로운 권위가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었지만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권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마침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영을 한 마디로 내쫓으십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그렇습니다. 새로운 권위란 육체나 세상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권위’입니다. 하느님은 ‘영’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권위는 온전히 영적입니다. 영들은 이 권위를 버텨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가 영을 지배하는 인간들에게는 영적인 권위가 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권위는 육체적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힘을 쫓았던 유다는 영적인 권위 자체이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승리한 줄 알았고 그 승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회개하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 싸움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권위를 추구해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둘 중의 하나는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높아지려는 본능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둘 다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에게서 보듯이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권위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권위를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극 같은 것에서 보면 심문하는 자리에서 나쁜 무리들이 모함을 씌워 착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때 한 사람이 뛰어 들어옵니다. 높은 관리들은 무슨 일이냐고 호통을 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온 두루마리를 펼치며, “어명이요”라고 하며 잡힌 사람들을 풀어주라는 등의 임금의 명을 읽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재판하던 자들의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어명을 가지고 온 관리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어명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권위는 하느님의 ‘어명, 즉 말씀’을 받아 전하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 전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권능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권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참된 예언자, 즉 하느님의 말씀만을 받아 전하는 사람의 권위를 누를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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