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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미꽃 향기/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30 조회수942 추천수15 반대(0) 신고


중국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쾅쾅쾅!” 요란스럽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봤더니 가끔씩 길에서 만나 눈인사만 나누던 녹색 작업복을 입은 우편배달부 아줌마였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근 그 아줌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노란 우편물 봉투 하나를 내 코앞에 불쑥 내밀어 건네주고는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저렇게 복스러운 얼굴에 좀 웃고 살면 더 예뻐 보이고 좋으련만 왜 저리 인상을 쓸까? 하긴 웃지 않고 살아가기는 요즘 들어 나도 매 한 가지다.

서울로부터 회지會誌가 도착했다. 한국외방선교회에서 계간지로 발행하는 회지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는 이 곳 중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본부의 소식이나 다른 선교지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의 동향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런 저런 소식 맨 마지막에 아주 작은 상자 기사 하나가 눈에 확 띈다. 사제 회원 중 한 분이 ‘자신의 원의에 따라 본회를 떠났고, 따라서 한국외방선교회 사제단에서 제명되었음’을 알리는 통지문이었다. 또 한 형제가 떠났구나! 형제 사제가 본회를 떠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번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얼른 떠오르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나는 매번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는 영락없이 이혼한 부부 중 어느 한 쪽 당사자가 된 느낌을 받는다. 함께 살 때 좀 더 잘 해 줄 것을......

사실 나와 같은 외방선교 사도생활단이나 수도회의 회원들이 어느 한 선교회나 수도회의 회원으로서 종신토록 살아가겠다고 하느님께 약속 (서원votum, 혹은 서약promessa)을 하는 것은 사랑하는 남녀의 일반적인 결혼 약속과 많이 닮아 있다. 사랑하는 청춘 남녀 한 쌍은 자신의 원의에 따라 상대방과 혼인하여 평생토록 한 몸을 이루어 살아가겠다는 계약을 통하여 정식으로 부부가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스스로의 원의에 따라 소속되고자 하는 회의 회원으로서 종신토록 살아가겠다는 하느님과의 계약에 의해 정식으로 종신회원이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한 개인 회원과 해당 회는 영원히 한 몸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이 때 쓰이는 교회법 용어 역시 ‘몸을 합친다’는 뜻의 합체合體 (incorporatio)이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음을 넘어서까지도 한 사람 혹은 한 공동체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약속은 자신의 전 생애와 전 존재를 걸고 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약속 중에 이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약속은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역시 영원을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존재들일까? 우리들 주변에는 꽤 많은 ‘한 몸’들이 다시 분리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부부관계도 깨지고 공동체도 갈라진다. 최근 들어 나는 이렇게 갈라지는 관계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들어 나는 한 때 영원을 약속했으나 이생조차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은 결코 영원한 계약이라는 의미를 의도적으로 축소시켜서 이혼이나 퇴회를 정당화시키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단지 우리들 인간의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며 우리 모두가 그 한계의 칼날 위에 서서 비틀거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이나 퇴회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들에 대해서는 측은지심이 가지게 되었다는 고백일 뿐이다.

이 고백은 결국 나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다. 로마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학위를 빨리 마치고 선교지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는 학문을 닦으면서 나를 완성시켜 나가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짧은 기간 내에 학문적인 성과들을 이뤄내고 시험이라는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는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서도 항상 형제 사제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선교사로서의 삶을 꿈꾸고 살았다. 나는 형제 사제들이 있는 선교지에서 몸뚱이를 움직여가며 깨달음을 체험해 가는 선교사이고 싶었다. 나는 다른 동료들이 휴가를 즐기는 방학 기간 중에도 단 한 번도 책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빨리 로마를 떠날 수 있었고 결국 지금은 이렇게 중국이라는 선교지에서 일기를 쓰고 있다.

하지만 막상 선교지에 도착해서 채 몇 달을 살지도 않은 지금 나는 톡톡히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선교지에서의 또 다른 형태의 도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유치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아무튼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점점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웃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내가 그토록 함께 하고 싶었던 형제 사제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통해 나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무조건 ‘메아 꿀빠, 메아 꿀빠, 메아 막시마 꿀빠!’하고 부르짖으면서 내 삶 안에서의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터무니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형제 사제들에게 나는 무슨 언어를 건네야 할까?

한국외방선교회는 실체가 없이 형제 회원들의 존재가 만들어가는 이데아적인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 회원들의 관계가 비틀어지면 그것은 틀림없이 나와 회의 관계의 왜곡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부부생활을 지탱해 주는 것은 넓고 화려한 아파트가 아니라 부부 사이에 피어나는 부부애와 상호신뢰이다. 사랑과 신뢰가 없으면 넓고 화려한 아파트는 더 이상 둘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공동체 생활 역시 그것을 지탱시켜 주는 것은 형제 회원들 간에 피어나는 형제애와 신의이다. 형제애와 신의에 상처를 입게 되면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공동체와 영원을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동료 사제들의 환대(?)는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공동체와 동료 회원들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근본적인 차원에서부터 다시 정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혼식은 치렀지만 여전히 따로 떨어져 장미꽃다발을 교환하면서 환상 속에서 살던 신부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현실로 돌아와 신랑과 함께 방귀를 뿡뿡 뀌어가며 한 집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연신 ‘흠흠’거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게 하는 은은한 장미꽃 향기로부터 코를 비틀어 잡고 숨을 참게 만드는 이 고약한 방귀 냄새로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정녕 결혼 생활이었단 말인가? 내 방귀 냄새도 상대방에게는 이렇게 고약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성숙해 지는 것이 결혼 생활이었단 말인가? 쉽지 않구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어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결혼 생활!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어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수도 생활! 이것들은 결코 말처럼,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선교지에서의 삶이 외부적인 조건의 도전뿐 아니라 내부적인 조화의 문제까지도 함께 넘어가야 하는 피곤함으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나 스스로가 이런 체험을 통해 공동체 생활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넓혀 가다보니 새삼 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너무나 대단하게만 보인다. 새삼 한 생을 오롯이 투신, 묵묵히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선배 구도자들이 너무나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그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한편 영원히 한 몸이 되어 살아갈 것을 약속했으나 중간에 다시 갈라지는 사람들은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들의 판단보다는 우리들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웃음이라고는 찾기 힘든 무뚝뚝한 표정으로 우편물을 쑥 내밀고 돌아서는 우편배달부 아줌마의 얼굴 속에서 나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느낌이 영 편하지가 않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나의 현실이다. 이것도 나의 결혼 생활의 한 부분이다. 회를 떠난 형제 사제를 생각한다.

“잘 가세요. 어찌 됐든 그 동안의 마음고생은 뒤로 하고 앞으로는 행복하길 빕니다. 진리와 함께 행복한 사제로 잘 사셔야 해요. 안녕.”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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