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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탈리타 쿰 [이리 떼 속인가, 세상 속인가]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30 조회수783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마르코 5, 35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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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타 쿰, 소녀야 일어나라. 현 시대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잠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시다. 거짓된 메세지의 추종자와 이념을 숭배하는 이념 교조주의자들인 '더러운 영'의 지배에 결박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탈리타 쿰, 하시고 계신다 하겠다.

가짜 마리아상(대탕녀)을 추종하는 길잃은 영혼들, 그리고 세상의 이념으로 하늘 나라를 희망하는 저 어리석은 '이념 교조주의자'들에게 팽배한 '절충주의'의 사슬에 결박 되어져 자기 무덤으로 끌려가는 영혼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탈리타 쿰 하시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은 죽었다고 말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아니다, 잠자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탈리타 쿰, 일어나라'고 준엄하게 말씀 하시고
계신다 할 것이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
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월요일>

이처럼 더러운 영들이 지배하는 거짓된 메세지와 이념의 우상을 추종하는 저 무리들 중에 제 혼자 낙동강 오리알처럼 떨어져서 정신 빠진듯이 홀로 누군가를 따라 다니며 괴성을 지르는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린양들을 부르시며 탈리타 쿰, 하시는 것이다. 한 이념 교조주의자가 이념을 교회 안에서 선전하는게 말씀의 힘에 의해서 막혀 버리자 화가 나서 졸졸 따라 다니며 신앙을 폄훼하는데 영적 차원에서 제 스스로 주위의 더러운 영들을 부르고 있는 중이다고 말할 수가 있다.

더러운 영들의 군대는 더러운 영들을 불러 모아 저 한 인간 안에서 더러운 영들의 군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하겠다.  한 인간 안에서 형성되는 군대는 이리 떼가 되어 그리스도의 양들을 해치러 가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의 제자들'에게 탈리타 쿰, 일어나라 하시며 담대하게 이리 떼 속으로 가거라 하고 명령하신다. 그분께서는 피에 젖은 옷을 입고 말씀으로 싸우시는 분, '하느님의 말씀'이시다.

자신이 마치 '사회정의'의 표지인 듯이 큰 착각에 빠진 자가 있는 것같다.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거라"고 했는지도 알지 못하는 영적 쇄신이 필요한 심각한 시대의 현실이다. 세상이 이리 떼일까, 세상의 이리 떼일까. 시대가 이리 떼일까, 시대의 이리 떼일까.

이념 교조주의에 빠지면 (신앙의 어둠에 갇혀) 그 말씀의 이리 떼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하겠다. 아마도 혼자서 대단한 착각 속에 허우적 거린다. 더러운 영이 발목 잡는 것에 상대하지도 않는다. 더 멀리 바라보는 눈이 바쁜데 더러운 영 하나에게 오롯이 묶일 이유가 없다. 단지 자기 안에 더러운 영을 식별할 수 있도록 알려 주고 가야 할 여정의 길을 지속적으로 간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속으로 가는게 아니라 이리 떼 가운데로 가야하는 것이다.

영적인 전쟁
은 더러운 영 하나가 발꿈치에 상처를 낸다고 해서 거기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이 말씀과 성체의 예수님을 따라 뱀의 머리를 짓밟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말씀과 동떨어진 더러운 영에게 속박된 이념 교조주의자들은, 그런 시대의 이리 떼들은 (별도의 게시글 참조),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아 듣지 못한다.

예수님에 대하여 정신병자 취급했듯이 말씀이 가려져 있다. 예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머리에 양의 탈을 쓴 이리 떼를 신앙의 빛으로 (말씀의 빛으로) 분별해 내고 식별해 내는 것이 시대의 영적인 전쟁, 당대의 영적 쇄신이다 할 것이다. 시대의 이리 떼들(절충주의, 탕녀지체, 종교혼합/별도의 게시글 참조)에서 묶인 사슬을 풀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마태오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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