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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 간다! 푸르른 내 청춘 /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1 조회수728 추천수13 반대(0) 신고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내가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였던가? 어느 가수가 통기타를 치며 이렇게 구슬프게 노래를 불러서 가는 세월을 아쉬워했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밤, 방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벌써 몇 번째 그 노래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바로 그 시간, 허베이 사범 대학 캠퍼스 저 편 어딘가 에서는 벌써 몇 시간 째 시끌벅적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밤 9시가 넘었는데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 학교에 무슨 큰 행사가 있는 가 보다. 주말 저녁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 TV를 보면서 보내는 것 보다는 훨씬 낫겠다 싶은 생각에 어느새 내 발걸음은 노랫소리를 향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으면 이렇게 밤에도 옷을 다시 챙겨 입고 나가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될 때가 종종 있다.

대학 도서관 앞 광장에는 비가 내리는 데도 꽤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우산 들 사이를 비집고 무대 근처로 가까이 가서 보니 십 수 명의 참가자들이 벌이는 캠퍼스 노래자랑 같은 성격의 행사였다. 잘 생긴 남학생이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면 주로 뚱뚱한 여학생들이 꽃다발을 안겨 주면서 은근 슬쩍 포옹을 하고, 예쁜 여학생이 올라와 노래를 부르면 주로 뱅뱅 도는 고시생 안경을 낀 더벅머리 남학생들이 수줍게 꽃다발을 전해 주고는 도망치듯 무대를 내려갔다. 그럴 때마다 청중들은 우산을 높이 쳐들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약간은 촌스런 느낌이 나는 무대의 모습도, 학생들의 모습도 마치 내가 대학생 시절이던 20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연출된 느낌이었다. 세상 어디를 가나 돈도 없고 놀이 거리도 많지 않은 대학생들에게는 이런 축제가 더 없이 신나는 때이다.

젊음이다. 푸릇푸릇 생기가 넘쳐나는 젊음이로구나! 남학생들이 여학생 가수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열광하는 것이, 여학생들이 남학생 가수를 향해 우산을 돌려가며 환호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조물주의 섭리이거늘 누군들 이를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저들만한 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들보다 더 열광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을 텐데 나는 어느새 마흔이 훌쩍 넘어 있구나. 20년 전에 나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노래자랑이 끝나고 한참을 터벅터벅 비를 맞으며 걸었다. 내 지난 대학 시절을 잠깐 더듬어 봤을 때는 갑자기 짙은 최루탄 냄새가 머릿속을 채워왔다. 그리고는 광주, 군부독재, 민주화, 데모, 화염병, 백골단, 수업거부...... 등이 차례로 떠올랐다. 슬펐다.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청춘이 저렇게 무시무시한 단어들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질 진대 하물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광주의 청춘들의 넋에 대해서는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물론 사랑에 빠진 적도 있었다. 주로 내 쪽에서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감정, 누군가가 몹시 그립다는 느낌 자체로 행복했다. 하지만 그리워하던 대상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으면 나는 도망치기에 바빴다. 줄 곧 그런 식이었다. 왜 나는 상대와 함께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던 걸까?

지난 청춘에 대한 이런 저런 회상에 젖어 밤이 늦도록 캠퍼스를 배회하다가 숙소에 들기 전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내 인생의 청춘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그리고 그 청춘은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현재진행형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결론. 생물학적으로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절정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존재론적인 차원에서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나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절정이 될 수 없다. 이미 20년, 아니면 25년 전에 지나가버린 과거의 청춘은 나의 기억으로만 남아있기에 일점, 일획도 우리의 의지대로 바꿀 수가 없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조금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 과거의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우리의 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지금과 여기’에 우뚝 서 있는 ‘나’는 언제나 인생의 최고 절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시간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쉰이라도, 육십이라도, 칠십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를 위해 작은 희생과 봉사를 기꺼이 치르고자 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만 있다면 그는 인생의 청춘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그렇게 아름다운 청춘을 생을 마칠 때까지 살다간 많은 이들이 있다.

나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는 이십대 초반의 깜찍한 오드리 햅번 (Audrey Hepburn)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암으로 투병하는 중에도 유니세프 (UNICEF) 친선 대사로서 아프리카의 기아 어린이들과 함께 서 있는 노년의 오드리가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 나는 젊은 영화배우로서의 오드리의 삶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로 보냈던 그녀의 생의 마지막 순간들이 그녀의 인생에 절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들 역시 우리들 삶의 최고의 절정을 보내고 있다. 이 최고의 시간, 최고의 청춘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시간을 거룩하게 보내지 않으면 나중에 더 많이 슬퍼할테니까...... 사무엘 울만 (Samuel Ulman)의 청춘 (Youth)라는 글을 함께 나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란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
6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이상을 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리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이 주름진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되어버린다

6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미래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있는 '무선 우체국'을 통해
사람들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격려,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으로 덮이며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대라도 인간은 늙지만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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