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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자리를 지키려는 이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1 조회수825 추천수13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연중 제4주간 수요일 - 자리를 지키려는 이들
 

 



 


요즘 가장 뜨면서도 논란의 중점이 되고 있는 영화는 안성기씨 주연의 ‘부러진 화살’입니다. 그래서 저도 보았는데, 이 영화는 ‘도가니’와 마찬가지로 골리앗과 같이 짓누르는 어떤 거대한 힘에 대한 힘없는 보통 시민들의 분노를 표현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대학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김경호 교수는 부당하게 해고됩니다. 이후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하기에 이릅니다. 격렬한 몸싸움, 담당판사의 피 묻은 셔츠, 복부 2cm의 자상, 부러진 화살을 회수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곧이어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게 됩니다.
 

사법부는 김경호의 행위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테러’로 규정, 피의자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피의자 김경호는 실제로 화살을 쏜 일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하면서,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 같았던 재판은 난항을 거듭하게 됩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고, 진술도 서로 엇갈리는 사이 단 하나 ‘부러진 화살’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비타협 원칙을 고수하며 재판장에게도 욕설을 서슴치 않는 김경호의 불같은 성격에 변호사들이 하나둘씩 변론을 포기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선임된 이른바 ‘노동운동 변호사’ 박준의 등장으로 점차 활기를 뛰어갑니다.
 

박준은 속옷과 겉옷에는 피가 묻어 있는데 중간에 있던 셔츠에는 혈흔이 없다는 것을 이상히 여깁니다. 또한 석궁은 돼지고기를 놓고 실험한 결과 15cm 이상의 깊이로 박히는 것이 보통인데 어떻게 미미한 상처만 남게 되었는가도 의문으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옷의 혈흔 DNA검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증거물인 부러진 화살도 없고 증거물이라고 채택된 것도 그 신빙성이 떨어짐에도 판사는 이미 시작되기 전부터 유죄를 확정했다는 듯이 유죄판결을 내립니다.
 

어린이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증거들을 내어놓고 처음부터 결정된 유죄로 끌고 가기 위해 무력으로 펼치는 권위 앞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내내 자신이 김경호가 된 듯이 분을 터뜨립니다. 어쩌면 우리들 자신도 이러한 거대한 힘 앞에 한 번쯤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힘을 지닌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대항하는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하는 것일까요?
 

힘을 지닌 이들은 그 힘 때문에 살기 때문에 그 힘이 위협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판사들은 자신들의 판결에 불만을 품고 칼과 석궁을 들고 찾아올 또 다른 위협자와 김경호를 겹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를 엄단하지 않으면 누군가 또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할지 모르기 때문에 재판을 하기 전부터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즉 자신들이 고수해야 하는 것이 ‘법’ 자체보다는 자신들의 ‘자리나 지위’가 되어버리니, 법을 어기더라도 권위는 지켜야겠다는 생각들을 다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힘을 가진 권력자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교만이란 것이 들어있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모든 것들을 위협자라고 여기게 될 때 나의 이성은 무너지고 맙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모든 이성과 윤리는 사라지고 맙니다.

 
 

예수님도 당시 권력에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 분도 재판당하시기 전부터 사형이 선고된 분이셨고 그래서 재판 과정에서 거짓 증인들이 진술을 합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말을 하던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말도 하시지 않고 결과에 순응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을 드러내는 더 큰 저항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이 기적을 일으키고 지혜로운 말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유다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그 마을에도 피해를 입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 가족들도 예수님이 미쳤다고 하면서 잡으러 다녔고, 그 마을 사람들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미리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나중에는 절벽에까지 끌고 가 예수님을 밀어 떨어뜨리려고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비이성적이 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자신들을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법관들도 언론인들도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을 양심까지 포기하면서 짓누르려 하는데, 어찌 보통 사람들이 그런 것이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들뿐인 것입니다. 자아를 죽인 사람들뿐입니다. 세상의 힘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들만이 오만에 눈이 가려지지 않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또한 유대교에 반하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와 나라의 권력을 수호하려고 했던 것뿐이지 ‘진리’의 수호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자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나갑니다.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성령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들도 똑 같이 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모든 것들을 쓰레기로 여길 수 있을 때, 눈이 밝아지고 보다 이성적인 우리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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