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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정결례와 봉헌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1 조회수966 추천수13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주님 봉헌 축일 - 정결례와 봉헌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 중, 1970년대 중동 남편들이 중동에 건설 붐이 일던 시절의 실화라고 합니다.
 

남편이 돈 벌려 중동으로 간 두 주부가 있었습니다. 둘 다 멀리 열사의 땅에서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보내주는 돈을 꼬박 꼬박 저축 했습니다. 통장에는 돈이 점점 쌓여가고 어느덧 천만 원도 넘어갔습니다.

둘 다 남편들이 떠날 때 돈을 모아 셋방을 면하고 집을 장만하자고 약속했던지라 통장만 보면 벌써 집을 장만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주부에게 웬 전화 한통씩이 걸려왔습니다. 어떤 남자가 전화를 했는데 외롭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고 그저 외로운 부인들에게 위로를 주기위해서 전화를 했노라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댄스 교습소 춤 선생 이었습니다.

외로우시니 운동 겸 소일거리 겸 한번 놀러 나오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살았지 마음속 한편에는 남편이 없는 외로움에 힘들었던 주부는 설마 별일 있으려고 심심한데 구경이나 한번 가지 뭐 하는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그 길로 그 주부는 매일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비에게 몸도 돈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부인은 그도 전화를 받고 마음이 움직였으나 다시 돌아올 남편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져먹고 요동치 않았습니다.

때때로 외로움과 그리움에 울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남들과 같이 풍족치 못하여 셋방에 살며,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하나 하는 신세 한탄도 나왔지만 오직 돌아올 남편을 생각하며 꾹 참고 아이들을 기르며 살았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두 집에는 중동에서 편지 한통씩이 날아왔습니다. 뜯어보니 남편이 돌아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여보 얼마나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나 며칠 후면 귀국이요”

편지에는 비행기의 도착 날짜와 시간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제일 보고 싶으니 돈이 아무리 들어도 꼭 김포 공항에 나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두 부인은 둘 다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 부인은 너무 기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숨겨 논 통장을 끄집어내어 보고 또 보고 울기도하고 웃기도하고 어서 그 날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하루하루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이집 저집에 가서 자기 남편이 돌아온다고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부인은 그 날 밤부터 불안과 두려움 후회로 역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통장은 이미 벌써 비었고, 빚마저 벌써 수백만 원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죽을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그 날 한 부인은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고 김포공항에 나갔습니다. 핸드백에는 이미 수천만 원으로 늘어난 통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부인은 그날 자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퍼온 글: cafe.daum.net/wordofgod)

 
 

오늘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셔서 성전에 바쳐진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이 문장에서 복음사가는 ‘정결례’와 예수님의 ‘봉헌’을 같은 문장에 놓습니다.

사실 주어가 생략되었지만 정결례를 해야 하는 사람은 ‘성모님’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여자가 자녀를 낳기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여겨져 비둘기 등의 제물을 바치며 정결례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상한 것은 당시 법으로는 예수님을 바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 아버지인 ‘요셉’이어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 맨 처음 예수님의 족보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자녀도 여자가 낳는 것이 아니고 남자가 낳는 것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아기를 낳아 부정한 몸이고, 또한 여자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아기가 사제의 손에 의해 봉헌되었기 때문에 히브리 문화 안에서 ‘부모’가 아들을 봉헌했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우리는 여기서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간에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예식’과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오롯이 도로 바쳐 ‘봉헌하는 예식’은 이 문장 안에서 미묘하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위의 예화에서 보았듯이, 정결하지 못한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받은 돈을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자신을 위해서 써 버렸습니다. 반대로 정결한 여인은 남편에게 다시 그 돈을 바치는 것에 매우 행복해 하였습니다.

성모님은 세상에 유일하게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오롯이 도로 바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정결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성자께서는 그래서 그 정결한 몸을 다시 받아 당신의 신성과 결합하여 예수라는 인간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또 오늘 봉헌에서도 사실 자신이 오롯이 바친 몸을 지니고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바치는 실제 주인공은 성모님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정결례가 되는 것입니다. 봉헌하시기에 정결하신 것입니다. 시메온은 성모님의 영혼이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프실 것이라 합니다. 이는 지금은 상징적으로 아기를 봉헌하지만 나중에는 실제로 아들이 죽는 것을 보아야 하며 그렇게 십자가의 속죄 제물로 봉헌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오롯이 모세만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듯이 제물을 드리는 중재자는 깨끗한 인물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하느님께 드리실 수 있는 만큼 깨끗하신 분은 그 하느님을 세상에 내려오게 하신 통로이신 성모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내 자신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고 내 남편도 내 자녀도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들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신랑이신 하느님을 배신하는 것이고 간음하여 정결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결하게 살지 않으면 마지막 날에 자살한 그 주부처럼 될 것이고, 정결하게 살았다면 기쁘게 그 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정결하게 사는 유일한 길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부터 시작하여 내 자신까지 모두 하느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봉헌하는 것입니다. 봉헌축일의 가치는 이렇게 참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정결한 신부로 만드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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