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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편함의 진실/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2 조회수667 추천수13 반대(0) 신고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서 베이징을 방문해야만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스자좡에서 보통 열차를 이용하면 5시간가량,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시속 200킬로미터 속도로 달리는 특급 열차를 이용하면 2시간가량 걸리는 곳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감안하면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인데도 나는 베이징을 방문하는 일이 썩 편하지가 않다. 해가 바뀔수록 복잡한 곳, 복잡한 일들이 꺼려지는 이유도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과의 어지러운 관계에서 기인하는 불편함이다. 중국이라는 선교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아니 어쩌면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상대방에게는 내가 채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충분히 꼬여가기 시작한 어지러운 관계가 이제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니 마음인들 편할 리가 없다.

아주 우연히 연락이 닿은 고등학생 시절의 친구를 베이징에서 이십여 년 만에 만났다. 어릴 적 만났던 친구라서 그런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또 현실적인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도 마음만은 이십여 년 전의 그 시간에 있는 듯 편안했다. 아! 나에게도 그렇게 곧 피어날 꽃봉오리 같이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던가! 들녘에 한들거리는 한 송이 들꽃처럼 건강하고 청초했을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그토록 찾아 이곳저곳을 헤맸던가! 나는 그 친구를 만나는 동안 고등학생 시절 충격으로 다가와 나의 존재 의식을 일깨워주었던 책 한 권의 제목을 기억해내고는 속으로 계속해서 되뇌고 있었다. 『자기로부터의 혁명』. 만약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그 책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사제직을 통해 하느님을 닮은 창조적 인간의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고자 하는 오늘날의 내 모습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친구의 다른 지인이 동석을 하게 되었다. 내가 쓴 책들을 읽은 독자라고 자기소개를 한 그 분은 내가 쓴 글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해 주었다.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원문 내용 그대로 인용하는 것을 보면 내가 쓴 글을 참 정성들여 읽은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질문 하나를 불쑥 던졌다.
“신부님의 글을 읽다보면 아직 할 말이 남아있는데 어느 선에서 멈춰버리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절제인가요? 아니면 두려움인가요?”
“무지無知라고 봐야겠지요. 답답한 무엇인가가 남아있어서 불편하기는 해요.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요.”
“무엇을 모르겠다는 말이죠?”
“그것을 말하고 나면 편해질까, 그것을 과연 언어로 표현할 수는 있는 것일까, 그것을 표현한다면 언제가 좋은 때일까, 등등 아직 선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기다리라는 말씀인가요?”
“예.”

다음 날 일을 보기 위해 어느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때가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그곳에는 젊은 여자 한 분만이 사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 분과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그 여자 분의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에 마치 로봇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어쩌면 그렇게 표정 하나도 없이 다른 사람과 말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오히려 격무에 시달린 피곤함이라도 조금 얼굴에 배어났더라면 그녀의 짧고 분명한 답변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내게 무엇인가를 잘못한 것은 분명 하나도 없지만 나는 그녀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치 내가 그녀를 고문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너무 불편했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묵주반지를 보고 반가워서 물었다.
“천주교 신자이신가 보죠?”
“예.”
“한인천주교회 나가세요?”
“예.”
역시나 무표정한 얼굴과 똑똑한 목소리로 짧게 답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일초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다시 스자좡을 향해 달리는 기차 안.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지막한 언덕 하나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화베이 평원을 바라보면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야! 이제야 살 것 같다.”

‘불편하다’는 몸이나 마음, 혹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따위가 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어떤 사물을 이용하기가 편하지 않거나 감기에 걸려 몸이 편하지 않는 상태와 같이 그 불편함의 이유가 외부에 있을 때는 외부의 조건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편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변하든, 네가 변하든 사람이 변하는 문제가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두 가지 해결 방법이 있다. 첫째는 내 마음을 바꾸는 것. 둘째는 내가 불편함을 비켜가는 것. 어느 경우에도 상대가 바뀌기를 기다려서 편해지는 경우란 없다.

내 마음을 바꾸는 것도, 불편함을 비켜가는 것도 그 ‘편하지 않은 상태’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자세히 들여다 본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다. 불편한 원인만 명확히 찾을 수 있다면 그 불편함은 이미 반 이상 해결된 것이다. 많은 경우 그 불편함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전혀 다른 곳에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들 인간이 느끼는 내적이거나 혹은 관계적인 불편함의 대부분은 내가 중심에 서 있는 것을 곧 편안함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편협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만약에 어떤 사람이 화려한 중심에서 벗어나 어느 평원 한 구석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묵묵히 걸어가는 일은 기꺼이 즐길 수만 있다면 그를 불편하게 할 일이란 육신의 고단함과 영혼의 고독뿐이다. 그런 불편함은 물 한 모금과 밤하늘의 별똥별 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금방 풀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을 편안함이라고 여기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들 존재의 미숙함이나 불완전성을 훨씬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원래 미숙하고 불완전한 우리들의 처지를 인정하고 나면 내적이거나 관계적인 차원에서 오는 불편함에 그때그때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비켜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가 우리를 편안히 쉬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 여유가 우리를 세상일에 대한 집착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하느님의 일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준다. 그 여유가 우리를 하느님을 닮은 창조적인 사람으로 이끌어간다.

화려한 중심 베이징을 벗어나 거친 화베이 평원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일몰을 맞이했다. 거칠고 건조한 화베이 평원의 지평선을 넘어가는 태양이 고층 건물을 넘어가는 태양보다 훨씬 여유롭고 기품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도 좀 더 여유롭고 품위 있게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는 편안해 졌다. 박영근 시인의 ‘저 꽃이 불편하다’를 소개한다.



저 꽃이 불편하다 - 박영근 -

모를 일이다 내 눈앞에 환하게 피어나는
저 꽃덩어리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거
불붙듯 피어나
속속 잎까지 벌어지는 저것 앞에서 헐떡이다
몸뚱어리가 시체처럼 굳어지는 거
그거
밤새 술 마시며 너를 부르다
네가 오면 쌍소리에 발길질하는 거
비바람에 한꺼번에 떨어져 딩구는 꽃떨기
그 빛바랜 입술에 침을 내뱉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흐느끼는 거

내 끝내 혼자 살려는 이유
네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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