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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분별력의 지혜 - 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4 조회수46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2.4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열왕 상3,4-13 마르6,30-34

 

 

 

 







분별력의 지혜

 

 

 

 




등 따스하고 배부르면 도 닦기 힘들다는 말이 있습니다.

늘 실감하는 진리입니다.

좀 춥고 배고파야 깨어있는 정신에 빛나는 지혜입니다.

 


강원도 설산(雪山)에서 좌선삼매경에 빠져 있는

어느 스님의 사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욕심을 비울 때 텅 빈 마음 안에 가득 한 지혜의 빛입니다.

지혜보다 큰 보물은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혜부족으로 욕심에 빠져 고통을 자초하는지요.

분별력의 지혜, 깨달음의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지혜를 찾으면 얼마나 행복하랴!

슬기를 얻으면 얼마나 행복하랴!

지혜를 얻는 것이 은보다 값있고 황금보다 유익하다.

지혜는 붉은 산호보다도 값진 것,

네가 가진 어느 것도 그만큼 값지지는 못하다.”(잠언3,13-15).

 



지혜 없어 가난뱅이요, 지혜 있어 부자입니다.

살 줄 몰라 가난뱅이요 살 줄 알면 부자임을 깨닫습니다.


애주애민(愛主愛民)의 무욕(無慾)의 사람에게 선사되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바로 그 전형적 모범이 솔로몬이요 예수님입니다.

 


‘솔로몬은 그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솔로몬의 효경(孝敬) 정신의 발로입니다.

이어 다음 대목에서 그의 겸손과 애민의 마음이 잘 들어납니다.

무욕의 겸손이요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 이렇게 기도하는 겸손한 자가 지도자입니다.

이런 솔로몬의 마음에 감동하신 주님의 즉각적인 응답입니다.

길다 싶지만 아름다운 대목이라 다 인용합니다.

 


“네가 자신을 위해 장수를, 부를,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또한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참 좋은 분별력의 지혜를 선사 받는 솔로몬은

누구보다 행복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분별력은 모든 지혜의 어머니로 아빠스의 필수적 덕목입니다.

분도 규칙 ‘제64장 아빠스를 세움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분도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밖에도 모든 덕행들의 어머니인 분별력의 다른 증언들을 거울 삼아,

모든 것을 절도있게 하여

강한 사람은 갈구하는 바를 행하게 하고,

약한 사람은 물러나지 않게 할 것이다.’(RB64,19).

 


이에 대한 주석도 참고할 만합니다.

 



‘분별력(discretio)은 분도의 중용사상을 대표하는 구절이다.

이는 과격하거나 지나치지 않음이요

깊은 생각에서 나온 절도 있는 태도이다.

분도성인은 이 분별력을 모든 덕의 어머니라 부른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추구할 때 모든 필요한 것을 곁들여 받듯이

솔로몬이 지혜를 청했을 때 분별력의 지혜와 더불어

안심하고 줄줄이 부와 명예를 선사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분별력의 지혜 없는 부와 명예는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본질적인 지혜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부와 명예입니다.

 



세속화의 와중에 있는 수도원들의 문제도

수도정신의 이완, 성소자의 부족, 재정의 어려움, 셋으로 요약됩니다.

 

이 또한 본질적인 수도정신만 투철하다면

재정의 어려움, 성소자의 부족 문제는 점차 해소되리라는 확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지혜로운 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며

주님과 함께 합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주님과 깊은 결속의 관상의 휴식 중에 선사되는 지혜입니다.

활동과 관상의 리듬이 바로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쉴 줄 모르는 끊임없는 활동이 심신을, 지혜를 고갈시킵니다.

가만히 있지 못함이 병입니다.

음악가 김두수와의 인터뷰 기사 일부를 소개합니다.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

 

“내 경우는 곡을 만들거나 공연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 시간이다.

…가만히 있을 때 깊고 새로운 사유를 하고 영적인 교감을 한다.”(김두수)

 

-맞다.

자본주의는 가만히 있는 걸 악덕으로 여긴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영어 점수를 올리고 하다못해 배에다 식스팩이도 만들고,

가만히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부러 되새기지 않으면 영영 확보하기 어렵다.-

 




활동과 관상의 리듬이 절대는 아닙니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입니다.

때로 사랑의 요구에 활동과 관상의 리듬도 깨질 수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군중을 보시자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즉시 관상의 휴식을 포기하시고 이들을 가르치는 주님이십니다.



마침 어제 읽은 미국 아빠스님의 글도 생각납니다.

 


-감정은 이성에 의해 인도되어야 하고,

이성은 믿음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Emotion must be guided by reason 
and reason must be guided by faith)-

 

여기서의 믿음은 바로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을 내포합니다.


활동과 관상의 합리적 리듬도

때로 믿음과 사랑에 의해 교정될 수 있음을 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를 통해

당신 안에 머물러 욕심을 비운 우리 모두를

당신 지혜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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