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혼자 사는데 꼭 필요한것/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6 조회수775 추천수15 반대(0) 신고



책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다치바나 다카시’와 ‘오에 겐자부로’의 사색에 관한 책 몇 권과 ‘파울로 코엘류’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몇 권, 그리고 ‘현각’을 비롯한 몇몇 스님들이 쓴 명상 서적 몇 권이다. 마침 가지고 있던 책들은 다 읽고 마지막으로 어느 수녀님께서 보내주신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에 관한 책도 이제 몇 페이지 남겨 놓지 않은 터라 더 없이 반가웠다. 이 정도 책들이면 적어도 봄이 올 때까지는 매일 매일 숨죽여가며 새롭고 은밀한 만남들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항상 좋은 책을 읽을 때면 활자화 되어 찍혀 있는 저자들의 영적인 보물들을 아무런 수고도 없이 나눠 가진다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함께 일어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관찰하면서 잠재해 있는 관음증을 해소하는 재미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여탕을 훔쳐보던 때만큼이나 스릴 넘치는 것이다.

해가 바뀔수록 책을 선택하는 입맛도 변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수백 권이 한 질로 되어 있는 책들을 출판사에서 붙인 번호 순서대로 마구 읽었다. 나름대로 출판사에서 선정한 책들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마구잡이식으로 읽었는데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내 또래의 사람들 대부분 그렇듯이 한국에서의 중고등학생 시절은 내 독서생활에 있어서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소유냐, 존재냐’와 같은 명저들을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책으로 따라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지금은 좀 달라졌겠지’하는 나의 기대는 아예 접어야 할 것 같아서 참으로 비통한 심정마저 든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시기에 인류의 정신과 숨결이 담겨있는 좋은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암기 위주의 교육과정을 따라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남들이 선호하는 직업을 가진다 한들 그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을까?

이삼십 대에는 사상가들이나 철학자들의 날카로운 지성과 깊이 있는 사색이 담긴 사상서적에 주로 손이 갔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같은 철학자들의 책들을 대할 때면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벽에 번번이 부딪히면서 겸손해 질 수가 있었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그 한계를 번번이 접하다보니 ‘번역자는 반역자다 (traduttore traditore)’라는 라틴 속담의 의미도 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 번역의 중요성이나 원서原書의 가치에 대해서도 그때 깨달았다. 이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아시아인이면서도 정작 아시아의 풍요로운 사상과 자유로운 정신에 대해서 너무 모르거나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삼십대의 마지막 서너 해를 로마에서 지내면서 오히려 아시아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우리 아시아의 문화와는 여러 면에서 너무나 다른 서구 유럽 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에서 유럽피안들과 함께 밥 먹고 기도하고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시아인들이 쉽게 다가가고 느낄 수 있는 하느님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초월성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괴리가 극복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져 있는 전통적인 서구 유럽 중심 신학이 오늘날 현대인들의 영성적 욕구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 또한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을 내 삶의 터전인 아시아로 되돌려 주고 있었다.

그래서 사십대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다시 『금강경』, 『도덕경』과 같은 책들을 손에 들게 되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깊이와 편안함이 전해져 왔다. 사십대가 되어 달라진 또 한 가지는 다시 소설책이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는 산티아고였다. 사막의 여인 파티마를 끝없이 그리워하면서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 길을 떠나는 산티아고! 나는 산티아고가 되고 싶었다. 아니, 나는 산티아고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시 소설이 재밌어 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살면서 만들어내는 사랑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마음으로 느끼는 일이 존재자체, 또는 존재하는 나와 절대자와의 관계를 깨닫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는 일보다 재미있고 편안하기 때문인가 보다.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의 직접적이고 예리한 논증이 그 칼날 같은 날카로움으로 우리들의 뇌를 자극한다면 소설을 비롯한 문학작품들이 가지는 은은하고 희미한 메타포의 매력은 하얀 입김처럼 따뜻하게 우리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뇌를 쓰는 것보다는 마음을 쓰는 일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혼자 사는 사람, 혹은 혼자 있고 싶은 사람에게는 책이 꼭 필요하다.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즐겨야 하는데 책을 읽는 일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또 가장 창조적인 일이기도 하다. 책이 없으면 자꾸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게 된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것이 꼭 해야만 하는 인사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이 나면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묻거나 의미도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즉석라면을 끓여내듯이 빠른 속도로 많은 사람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어지러운 관계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서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데 전화나 컴퓨터를 통한 외부와의 관계가 어지럽게 지속되면 마음을 모아 앉아 있기도 힘이 든다. 하지만 책은 다르다. 책은 그 내용에 흠뻑 빠져들다가도 이내 다시 덮어놓고 눈을 감은 채 앉아 있게 한다. 때로는 저자가 되어, 때로는 주인공이 되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여행을 즐기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중세 유럽의 어느 후미진 골목길을 조용히 걷다가도 금방 실크로드를 횡단하는 낙타 등에 매달려 있기도 한다. 책 속에서 우리는 ‘빅뱅’도 되었다가 ‘오메가 포인트’도 되었다가를 쉴 새 없이 반복하면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여행한다. 그렇게 홀로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서 우리들의 정신을 펄펄 살아있게 만드는 것으로 책만 한 것이 없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은 사람에게는 책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혼자다. 누구든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너’와 함께 있고 싶다면 오히려 ‘나’는 더욱 혼자여야 한다. 혼자이지 않은 ‘나’와 ‘너’가 함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찰나지간의 환상에 불과하다. ‘함께 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진정한 자아의 모습으로 홀로 서 있는 두 사람이 있는 것’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창조 때부터 하느님으로부터 품부 받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함으로서 홀로 서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진정한 자아의 모습으로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나’만이 비로소 또 다른 자아의 모습 그대로 홀로 서 있는 ‘너’를 발견할 수 있고 또 만날 수 있다. 거짓된 언어와 몸짓으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자리에 든다고 해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도 알 수 없는 어지럽고 복잡한 생각들로 잔뜩 둘러싸여 있으면서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언제나 신기루처럼 실망만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신기루가 환영幻影인 것처럼 거짓된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생각도 환상이다. 사람들은 ‘너’는 물론 ‘나’도 모르면서 우리는 함께 있다고 말한다. 누가 누구와 함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혼자 있으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고 또 물어서 깨우쳐야 한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나를 보내신 그 뜻과 만나야 한다. 그 뜻을 만난 사람들이 비로소 ‘그 뜻을 위해서’, ‘그 뜻과 함께’, ‘그 뜻 안에서’ 생생한 만남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하길 원하는 자, 혼자 있고 싶은 그대여! 다시 책을 들어라.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