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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 식별은 하느님께 속한다 [성전 봉헌과 십자가 봉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7 조회수391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이 사랑은 인간에게서 나는 사랑을 말하지 아니하고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사랑을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진리이시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사랑에서 진리가 나온다 할 것이다. 앞서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세상적 지식이 아니라 사랑의 지식, 사랑에서 나는 지식을 하느님의 지혜로 말할 수가 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진리에 관하여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의문 속에 가려진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 분명하게만 밝혀지는 그러한 육적인 진리가 전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를 육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이성주의 사슬에 결박되어 있는 탓에 영적인 차원은 인식할 수 없다고 하겠다. 영적인 차원은 사랑으로써 인식이 가능한 것이다.

하느님의 영적인 차원은 사랑으로써 알게 되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지성적 탐구에 묶여있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머리' 안에 속박되어져서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이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으로써'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는 사랑하는 사람 안에 머무르시는 것(1요한4, 16)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써 영적인 차원은 인식되어 진다.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근원에서 말한다면 '자신을 내어주는 투신'이다고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은 '그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사랑으로 하느님께 일치된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성전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사랑의 합일로 '성전 봉헌'이 일어나고 그 일차적인 봉헌은 사랑의 합일로 다시 '십자가 봉헌'으로 완전한 사랑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오 16, 24) 하셨다.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 자신을 버리는 일차적인 '성전 봉헌'이다  할 것이며 다음에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은 완전한 사랑의 봉헌, 곧 '십자가 봉헌'이다 할 것이다. 그것은 성체성사적인 삶으로의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인 자기 투신(제 십자가)을 말한다. 이같은 영적인 차원은 사랑의 체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랑으로써 영적 차원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어떤 진리일까. 인간은 선악과 열매를 먹고 진리를 얻고자 하였다. 악마의 죄에서 비롯되는 유혹의 목소리는 "하느님 없이"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랑이 없이 진리를 얻고자 하는 것은 천사의 반역으로써 '악마의 타락'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의 식별은 선악과(아래의 지식) 열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전적으로 소유되어 있는 '사랑의 힘'(은총의 힘)에 있다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힘은 말씀(진리)의 힘이며 사랑의 힘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만 주신 것이 아니라 말씀도 주셨다. 영의 식별은 자신의 '성전 봉헌'이 없는 사람인 말씀과 결합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성체성사적인 사랑의 삶, '십자가 봉헌'이 없는 사람인 성체와 결합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느님께 속한 영의 식별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적으로 영의 식별을 가장하는 속이는 영들은 겉으로는 진리인 같이 말하여도 영적인 사쿠라들이다. 그들의 거짓된 말은 하와적이고 아담적인 원죄의 상처가 남아있는 인간 본성의 손상인 또다른 하나의 유혹의 목소리일 뿐이다 할 것이다. 매도하고 기만하는 더러운 영을 소지한 영은 하느님께 속한 영이 아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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