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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떠한 눈도 본적 없고, 귀도 들은적 없다 [에파타]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9 조회수604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마르코 7, 32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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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서 158 “신앙은 이해를 요구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믿는 분을 더 잘 알고자 하며 그분의 계시를 더잘 이해하고자 한다. 한편 더깊은 이해는 다시금 더강하고 점점 더사랑에 불타는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신앙의 은총은 “마음의 눈”(에페 1,18)을 열어 줌으로써 계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한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계획 전체, 신앙의 신비, 신비들의 상호 관계, 계시된 신비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와 이루는 관계에 대한 이해가 포함된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계시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항구히 신앙을 완성시켜 주신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금언대로 “믿기 위하여 이해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


교리서 108 그리스도교 신앙은 ‘경전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말씀’의 종교이다. 그 말씀은 “글로 된 무언의 말이 아닌, 사람이 되시어 살아 계신 ‘말씀’”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죽은 문자로 머물지 않으려면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성경을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한다. 


교리서 1027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복된 친교의 이 신비는 모든 이해와 표현을 초월한다. 성경은 이를 생명, 빛, 평화, 혼인 잔치, 하늘 나라의 포도주, 아버지의 집, 천상 예루살렘, 낙원 등 비유적인 표상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해 준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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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코린 2,9).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하느님 말씀을 해석하는 권위는 교회에 있다. (교도권)  교회의 신자들이 말씀을 듣는다 (읽는다는 것) 그리스도교는 '경전의 종교'가 아니다. 살아계신 하느님 '말씀'의 종교 다.

말씀은 '죽은 문자'가 아니라 말씀은 '살아계신 말'이다는 뜻이다. 요한복음서에서도 "내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다. 이는 '말씀'이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에 창조되고 보존된다는 의미이다 할 것이다. 만물에는 눈에 보이는 육적인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영적인 것들도 '말씀'으로 말씀에 따라 보존된다 하겠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마태오 24, 35)고 말씀하신 예수님이시다. 말씀이신 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고 지금도 마음의 눈과 마음의 귀를 열어 주신다.

"에파타"하고 한 인간에게 살아 움직이고 계시는 것이다. 말씀께서는 한 인간에게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말씀과 결합된 '생명의 사람'에게 영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실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말씀'에 대적한다면 그것은 '악의 저항'이다. 하와와 아담은 말씀에 대항하는 악의 세력에게 유혹 당하여 '말씀과 분리되어' 하느님 안에서 떨어지고 만다. 영적인 차원에 접하면 사람들은 인식이 어려워진다. 그리하여 말씀에 적대하는 악의 세력을 못 본다

'신앙의 빛'의 도움 없이는 영적인 차원인 '악의 세력과 말씀의 싸움'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악의 세력은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는 말씀에 대하여 적개심을 갖고 말씀에 저항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와와 아담의 상태 때와 같이 인간을 말씀에서 떼어내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말씀과 결합하는 것을 아주 못 마땅하게 여기도록 논리를 편다라고 할 수 있다. 말씀께서는 인간을 해석해 주신다. 이 일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악의 저항'인 것이다.

이같은 영적인 차원을 볼 수 없다면 예수님께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눈과 귀를 열어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한다.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예수님께서 말씀이시기 때문이며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기 때문에 영적인 차원을
열어 주세요 하는 진정한 마음을 지녀야 '생명의 사람'(말씀의 사람)으로 변모되어지는 것이다.  




 '주님과 결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이 됩니다"는
성경 말씀에 믿음의 순종을 지녀야 한다

말씀과 결합하면 영적인 차원이 열리는 것이다
말씀께서 인간(삶)을 해석하신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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