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늘여행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0 조회수764 추천수13 반대(0) 신고



며칠 전 입춘이 지났으니 봄비라고 불러도 될까? 실로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우산 없이 천천히 걸어도 몸이 젖지 않을 만큼 아주 적게 내리는 가랑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먼지만 풀풀 날리던 메마른 도시를 촉촉하게 적셔 줄만은 했다. 겨우내 눈 한 송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바짝 말라있던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옆 건물의 회색 벽에 부딪히면서 길게 점을 찍어내는 모습이 이토록 상쾌한 그림이 될 줄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거리에 하나, 둘씩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나는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어디론가, 내가 그 전에 한 번도 발을 디뎌보지 못했던 곳으로 가서 그 길 위를 걷고 싶어졌다. 새롭거나 낯선, 혹은 아주 오랜만의 어떤 기분이 내 마음 속에 고개를 들고 일어설 때 몸뚱이마저 어느 새로운 곳으로 무작정 떠나가고 싶은 것을 보면 내게는 소위 ‘역마살’이라는 것이 단단히 끼어있는 듯 싶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차나 한 잔 하면서 비 내리는 오후 풍경을 바라보고 앉아 있을까, 마음속에서 몇 번 주저하기는 했지만 내 몸은 벌써 기차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있었다. 단순한 일은 단순한 몸을 따르는 것도 좋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기다림이 없이 곧바로 열차에 오를 수 있는 표를 한 장 구입했다. 어차피 내가 정한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시간이 정해 준 목적지를 순순히 따를 수 있었다. 목적지는 ‘씽타이’. 스자좡에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허베이성의 남쪽 끝부분에 자리한 조그만 도시였다. 기차에 오른 나는 객실로 들어가지 않고 열차의 연결부분에 있는 통로에 자리를 잡았다. 객실 안이 너무 시끄럽고 답답한 탓도 있었지만 통로에 서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화베이 평원을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승객들이 끊임없이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축축한 내 외투에 날아와서 붙는 것을 보고 연신 코를 킁킁 거리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갑자기 내 눈길을 사로잡는 한 가지가 휙 나타났다가 멀어져 갔다.

한 꼬마 녀석이 할아버지로 보이는 어른과 함께 연을 날리고 있었는데, 그 연줄이 늘어진 거리만큼의 끝자락 땅 위에 불룩하게 솟은 무엇인가가 있었다. 무덤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 위에 흙을 덮어 살짝 솟아오르게 만든 봉분과 그 앞에 무뚝뚝하게 서 있는 묘비석. 그 무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나로서는 산 속이 아닌 황량한 평원 위에 덩그마니 놓여있는 무덤 한 기가 너무나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 무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몇몇 집들이 모여 있는 조그만 동네가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그 무덤의 주인은 그 동네에서 살았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쓸쓸히 따로 떨어져 있던 무덤 한 기가 내 눈에 들어온 뒤로 나는 평원의 곳곳에서 묘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어떤 곳은 십 수기의 무덤이 모여 있기도 했고, 또 어떤 곳은 서너 기가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끝도 없이 펼쳐진 평원 위에, 자신들이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갈고 엎었을 대지 위에 그렇게 누워 있었다. 아!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가 살 던 곳에 눕게 되는구나! 하긴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서 살던 사람들이 자기가 살 던 곳을 떠나서 수백, 수 천리나 떨어진 산을 찾아가 누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전쟁터의 군인들이나 여행길에 오른 여행가들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땅 위에 누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시공의 제한을 받던 육신이라는 옷은 벗어서 잘 개어놓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하느님의 품 안으로 돌아가는 그 여행은 하늘여행이라도 불러도 좋을 듯하다. 어느 누구도 이 하늘여행을 피해갈 수는 없다. 사실 땅이라는 공간 위에 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이 시간 속의 여행도 시공을 초월한 하늘여행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이승에서의 여행은 저승으로의 여행과 연결되어 있다. 어차피 둘 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 말은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로만 들린다. 왜 그럴까? 연습이 부족한 탓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죽음을 가장 친한 친구로 가까이 하고 있다. 죽음은 바로 우리들의 코앞에 있다. 아직 젊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코앞에도 죽음이 있다. 죽음!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그 하늘여행 앞에서는 젊음도 늙음도 없다. 젊다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늙었다고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죽음은 언제나 우리들 코앞에 있다. 그 코앞에 있는 죽음이 내게 온다면 ‘그저 올 것이 왔구나’하고 맞이해야 할 뿐 다른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돈도, 명예도, 친구도, 가족도 그리고 그 밖의 어떤 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죽음은 그렇게 나 홀로 담담하게 맞이해야 할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그렇게 슬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여행길에 오르고 싶다면 미리 미리 그 여행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육신의 기력은 점점 잃어가고 정신은 하루하루 흐릿해질 때가 돼서야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결코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여행을 떠날 수가 없다.

하늘여행은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가장 첫 번째로 준비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삶이 여행과도 같은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짧은 여행이다. 오늘이라는 역에서 내가 내렸다면 내일이라는 역에서는 네가 내려야 할 것 이다. 이 여행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 모두는 곧 죽음이라는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할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피할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이 죽음이라는 여행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존재는 철저하게 평등해진다. 조금 일찍 떠나는 것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면 그리 서운해 할 일도 아니다. 그러니 남들 다 떠나는 이 여행을 두려워 할 일도, 슬퍼할 일도 없다. 죽음은 너무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일부분인 것이다. 매일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라.

두 번째 준비는 내 죽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렇게 짧은 여행을 위해서 자기 집을 머리에 이고 다닐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짧은 여행에는 최대한 간편한 행랑을 꾸리는 것이 좋다. 짐이 많으면 떠나기가 쉽지 않다. 이 짧은 여행의 끝에 가면 어차피 우리들은 몸뚱이마저 입고 있던 옷처럼 잘 개서 자기가 살던 평원이나, 산이나 혹은 강물에 벗어놓고 떠나야 하는데 그 밖의 다른 짐들은 어디다 쓸 수 있을까? 돈이나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은 손톱만큼도 가져갈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살면서 내게 없는 것을 갖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내게 이미 있는 것들을 잘 쓰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더 가지려는 욕심을 버려라.

세 번째 준비는 내게 이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 내게 불어넣어주신 당신의 숨결이다. 그것은 내 본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행복하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길게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행복은 외부에 있지 않다. 행복은 항상 이미 내 안에 내재해 있다. 내 안에 이미 자리하고 있는 그 행복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나의 본성을 발견하는 것과 철저하게 일치하는 내면적 사건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자아의 본성을 찾아가는 작업은 태초부터 하느님께서 어디엔가 불어넣어주신 행복의 코드를 풀게 해 줄 것이다. 이미 내 안에 있으면서 변하지 않는 그 본성을 발견하고 그 본성을 따라서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깨닫는 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다. 그는 이미 하느님과 함께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찾아라!

나는 머지않아 저 화베이 평원에 누워 잠들어 있는 사람들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옷을 벗어 묻어놓고 하늘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당신들 또한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하느님께서 내게 불어넣어주신 당신의 숨결을 따라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는 것 뿐이다. 나는 그렇게 빌고 또 빌 뿐이다. 그렇게 기도가 끝나갈 때쯤 나의 집이 가까워졌고 세상은 이미 어두워졌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여행을 마치고 또 다른 여행을 떠나게 된다. 지금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라는 말이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