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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영과 몸 / 우리의 영과 몸 [친교, 결합]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1 조회수336 추천수1 반대(0) 신고

자기에게 들어오는 생각들을 분별하고, 선한 생각들을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것으로 뇌리에 간직하며, 악한 생각들을 마귀가 생기게 하는 것으로서 정신으로부터 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다가 잔잔할 때 어부들은 그 깊은 데까지 볼 수 있고 고기들은 그들의 시야에서 숨겨질 수 없습니다. 한편 바닷물이 바람으로 출렁일 때는 잔잔할 때 확실히 보이던 것들이 더러운 물결 속에 감추어집니다. ...성령만이 우리 정신을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힘센 성령께서 들어오시어 도둑과 싸워 그것을 누르지 않으신다면 도둑이 훔친 것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사에서 영혼의 평화로써 성령께 손님으로서의 대접을 해드리고 밝은 등불이 우리 안에서 언제나 켜져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등불이 우리 마음 깊은 데서 빛나고 있을 때 마귀의 어둡고 음흉한 유혹이나 충동은 드러나게 되고, 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빛으로 말미암아 그의 악이 포착되어 그의 힘은 약화됩니다. < 포티케의 디아도쿠스 주교의 ‘영적 완성’에서, 주호식 신부님, 일부 참조 >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탕녀의 지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면, 탕녀와 결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까 “둘이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1코린토서 6, 15 - 17>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의 지체'와 '탕녀의 지체'에 대한 두가지 분별을 위한 정신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번 이냐시오 '영 식별'의 글에서 "두 정신의 차이를 깨닫기에 이르렀으니, 하나는 악마에게서 오는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이었다."는 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는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자이고, 탕녀와 결합하는 자는 탕녀의 지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둘이 한 몸이 된다"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둘이 어떻게 결합합니까. 두 몸이 결합될 수 있습니까. 육적으로 보면 참으로 엉뚱한 이야기입니다. 세상 천지에 물 두 방울이 결합되어지는 것은 보기 쉽지만 두 몸이 결합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용접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인간의 머리인 이성을 가지고 육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말씀이 인간의 마음에서 신앙의 빛으로 영적으로 조명해 보면 "둘이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이해는 육적인 단지 죽은 '문자'에서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에서 영적으로 이해가 되어지는 신앙의 문제입니다. 신학을 말하지 않고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하여 육적인 의문과 모호함은 여기에서 말하는 부분이 아니다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는 몸과 지체로써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서로 다른 두 몸을 용접을 해서 결합된 한 몸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로지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영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세상 말에 근거하면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한 몸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한 몸'에서 몸은 하나이지만, 그 영은 하나가 아니다면 '한 몸'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성체에서도 그 몸만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님의 영혼은 없다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신자들은 없습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몸'이라고 할 때에는 사람의 몸과 영의 전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이렇게 분명히 말합니다. [ 탕녀와 결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까 “둘이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 하고 기록합니다. "둘이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을 있는데 이것으로 탕녀와 결합하면 탕녀의 지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탕녀와 결합하면 탕녀와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몸만 하나가 아니라 그 영까지도 한 영이 된다는 것이 이미 '한 몸'에 전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하게 말합니다. 탕녀와 결합하여 한 몸, 한 영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1코린토서 6, 15 - 17> ] 그리스도와 결합하면 그리스도와 한 몸이며 뿐만아니라 주님과 한 영이 되는 것입니다. 몸과 영을 분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무지입니다. 

[ <교리서 365> 인간 안의 정신과 물질은 결합된 두 개의 본성이 아니라, 그 둘의 결합으로 하나의 단일한 본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교리서 367>  때때로 영혼은 ‘영’과 구별되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고 흠 없이”(1테살 5,23) 지켜지기를 기도한다. 교회는 이러한 구분이 영혼을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영’이란 인간이 그 창조 때부터 자신의 초자연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영혼’은 은총으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탕녀와 결합하면 탕녀와 한 몸이 된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 탕녀와 결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까? <1코린토서 6, 16> ] 그러나 그리스도와 결합하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됩니다. 뿐만아니라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1코린토서 6, 17> ]

그리스도 '주님과 한 영이 된다'는 것은 어떤 영을 말할 수 있습니까. 서로 다른 그리스도의 몸과 우리의 몸이 결합하여 '한 몸'이 되고, 그리스도의 영과 우리의 영이 결합하는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의 영에 결합하여 한 몸, 한 영이 된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몸과 영은 단일성을 지닙니다 (교리서 365, 367 참조) 그리하여 '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영과 우리의 영이 '한 영'으로결합된다면 그 영은 어떤 영을 말하는 것일까요.

당연하게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서 그 몸의 '한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은 같은 하나의 성령이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결합한 그리스도의 지체에게 있는 '몸의 영'은 성령이시기 때문에 [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1코린토서 6, 19> ]하고 성경은 명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탕녀와 결합한 이는 탕녀와 한 몸이 되어 탕녀의 지체가 되는데 그 '몸의 영'은 어떤 영일까요. 탕녀의 영은 성령이 아닌 너무나도 당연한 '더러운 영'(속이는 영)이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지체이면서 더러운 영과 한 영이 될 수야 없겠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의 지체다면 더러운 영을 식별해서 더러운 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하면서도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더러운 영들의 것이다면 그것은 '영적인 불구'와 다름 없습니다. 몸과 영이 다를 수야 없겠습니다. [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1코린토서 6, 17 ; 19> ]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한 영이 된>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더러운 영들의 짓거리들을 해서야 될까요. 그렇게 더러운 영들과 한 영이 되어 탕녀의 지체로 자기 몸을 만들어서야 될까요. [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탕녀의 지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6, 15> ]

<교리서 2284> 악한 표양은 악을 저지르도록 타인을 이끄는 태도나 행위이다. 악한 표양을 보이는 사람은 이웃을 악으로 이끄는 유혹자가 되는 것이다. <228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비유하신다. /// 덕은 구원을 위한 성령의 활동에 대한 순종의 결과이며 악덕은 이 활동에 대한 반항의 결과입니다.

<1865> 죄는 죄로 이끌며, 같은 행위를 되풀이함으로써 악습을 낳는다. 그 결과 타락한 경향들이 생겨나 양심을 흐리게 하고 선과 악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이처럼 죄는 번식하고 더 강력해지는 경향이 있다. <교리서 1869> ‘죄의 구조들’은 개인들이 지은 죄의 표현이며 결과이다. 이 구조들이 다시 그 구조의 희생자들을 같은 악을 저지르도록 끌어들인다. 유비적인 의미에서 이 구조들은 “사회적 죄”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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