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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2 조회수950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2월 12일 연중 제6주일



 Moved with pity, he stretched out his hand,
touched him, and said to him,
“I do will it. Be made clean.”
The leprosy left him immediately, and he was made clean.
(Mk.1.41-42)



제1독서 레위기 13,1-2.44-46
제2독서 1코린토 10,31ㅡ11,1
복음 마르코 1,40-45

먼저 공지사항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사실 지난 주 사제 연피정부터 새벽 묵상 글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피정에 집중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 새벽 묵상 글을 잠시 쉬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부터 16일까지 자리에 없습니다. 우선 교구장님을 포함해서 총대리주교님, 그리고 교구청 신부 모두가 15일까지 MT를 다녀옵니다. 그리고 15일과 16일 1박2일에 걸쳐 인천교구 대신학생 겨울 연수가 있어서 또 자리를 비웁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비우기 때문에 피정 중에 힘들었지만 새벽 묵상 글을 썼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공지를 남길지 아시겠지요? 맞습니다. 13일부터 16일까지 새벽 묵상 글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제가 없는 동안 새벽 카페를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의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많은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까지 만나고 있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실 신학교에 들어간 뒤, 점점 친구들과의 대화가 낯설어졌기 때문이지요.

대학생 때에는 사회 운동 이야기,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취업 이야기,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결혼 이야기와 주식과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요즘에는 자녀에 관한 이야기만 나옵니다. 이렇다보니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의 대화가 쉽지 않으며, 그들과의 만남에 그다지 큰 즐거움을 얻기가 힘듭니다. 특히 저의 삶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과는 점점 더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변함없이 만나는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친구들이지요. 그들과는 이 사회의 더러운 부분을 드러내며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렸을 때의 순수함을 간직하며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요? 자기 입장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친구야 말로 진정한 친구이며 그 만남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렇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람을 당신의 친구로 받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보통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빚진 것을 예수님께 받아내야 하는 것처럼, 무조건 고쳐달라는 청이었습니다. 즉,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나병환자는 “하고자 하시면”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입장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는 치유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입장에서만 주님께 청하는 기도는 오히려 더 멀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들어있는 기도만이 주님과 나를 진정한 친구 관계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친구가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유순함을 가르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나에게 조심성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나에게 자립심을 가르쳐 준다(J.E. 딩거).


이렇게 조그마했던 조카들이 지금은 다 저보다 커요.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
 

지난 부모님 회혼식 미사에 제 동창 신부들이 함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동창 신부가 제 조카 중 한 명을 보면서 깜짝 놀랍니다. “네가 벌써 이렇게 컸어?”라며 놀라는 것이었지요. 저와 동창신부가 대학원 때 2~3살에 불과했던 이 조카가 지금은 훌쩍 커서 고등학생이 되어 있으니까요.

15년이라는 시간. 제 조카가 15년이라는 나이를 먹는 동안 많이 의젓해졌고, 또한 할 수 있는 것도 참 많아진 시간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은 15년이라는 나이를 제대로 먹고 있는가 라는 반성을 해봅니다. 제대로 나이를 먹고 제대로 어른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요?

시간을 허투루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엊그저께의 일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처럼,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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