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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손이 되어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3 조회수3,633 추천수9 반대(0) 신고

 




연중 6주일
2012.2.12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 1,40-45


 

 

  예수님의 손이 되어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방법이 아닌 당신의 방법으로 사랑하심으로써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 주십니다. 이 시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는 전 신자 척사대회가 있었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주시고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신 성모회, 자모회, 전체 준비진행을 맡아주신 평협임원, 특별히 토마회원여러분, 알게 모르게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포근한 날씨를 허락하신 하느님의 안배로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도 더 큰 기쁨을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복음은 나병(한센병)환자의 치유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시대 당시 나병환자는 사람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육체적인 아픔도 컸지만 죄의 벌로 병이 온다는 인식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단죄 받았습니다. 사회적인 권리를 가지지 못할 뿐 아니라 그를 만지는 사람도 불결해 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외딴 곳, 광야에서 살아야 했습니다(2열왕5,7) 산송장처럼 취급(미수12,12)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록도, 안양 나자로 마을, 칠곡 피부과 의원등 외진 곳에서 나병환자의 치료를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정한 그에게 손을 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1,41) 하시고 감히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균이 옮길까 두려워 피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놀랬습니다. 그러고는 깨끗해진 그에게 단단히 당부하셨습니다.“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마르1,44).




좋은 일을 하셨으니 소문이 나서 인정을 받고 어깨에 힘을 주셔야 하거늘 오히려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행동에 대해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함입니다. 유명해 지고 싶은 사람, 인기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오해 받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또한 정결법을 고수하는 이들의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병을 낫게 하는 치유가 목적이 아니라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나병환자가 사회로 돌아가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당시 율법은 오늘 1독서에서 보듯 여러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백성을 위한다고 만들었지만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하다.”“사제는 그를 부정한 이로 선언해야 한다.”“부정한 사람은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다입니다. 나병환자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병자로, 죄인으로 낙인찍고 그를 멀리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를 내치지 않고 끌어안습니다. 병자이기 때문에 치유 받아야 하고, 보호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치유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고 불결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성당을 어떻게 나가느냐?’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허물로 누벼 놓은 아픔이 있다면 더더욱 주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로 치유해 주십니다. 아무 조건 없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십니다. 고해소가 왜 있습니까? 죄인을 심판하려고 있습니까? 자비는 심판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얼마 전 정부가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올 한해 3,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지도자로서, 스승으로서, 부모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권위를 다 잃고 나서는 구호만 남발하는 것이 아닌 가 생각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스스로의 권위를 회복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졸업식에 경찰차가 등장하고 선생님이 ‘선도’완장을 차고 다니는 것이 대책입니다. 대책이라는 것이 심판과 처벌이 우선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묘책입니다. 왕따 시키고 가두면 그만입니다. 보기 싫은 놈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것이 성공입니다. 이것은 아직 율법의 시대에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사는 사람은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의 새 삶을 위해 희생합니다. 그런 악에 빠지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며칠 전 ‘살레시오회 수사님이 오셔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따라 여러 일을 하고 있지만 죄를 지어 소년원에 가게 되는 청소년을 위해 그들과 함께 기숙하면서 기술학교를 운영하고 그들의 새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사고도 많고 어려움이 계속되지만 끝까지 사랑으로 껴안아주면 분명 변화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 보람도 느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저도 한 번 가본 일이 있는데 이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문제는 문제시하라” 그리하여 원인을 찾고 그것을 사랑으로 채워줘라! 사랑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합니다. 사랑만이 그들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후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부정한 사람이 되어서 외딴 곳에 머무르셨지만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는 것은 그분께 분명 능력과 향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간직하고 주님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들을 어루만진 더러운 손이 더럽지 않게 여겨지는 순간 우리의 손은 예수님의 손입니다. 주변의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 못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이들이 내가 돌보아야 될 사람이라고 받아들여진다면 그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도구가 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감히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을 뛰어넘으셨고 변두리 외딴 곳에서 새 생명의 싹을 틔우셨습니다. 소외되고 버려진 부정한 사람들의 한가운데서 그들의 새 삶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활동은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바오로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로마5,8).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말재주로 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말재주로 복음을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1고린 1,17).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사랑하기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봐서 애타고 미워하는 사람은 봐서 애가 탄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고 그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기를 그치지 맙시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으로 살 때 모든 것이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피난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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