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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벳사이다 마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4 조회수645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마르코 8, 23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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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사이다는 요르단 강 동편에 있어 헤로데 필리포스의 영토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그곳 근처 언덕에서 굶주린 군중을 말씀과 음식으로 배불리시어, 죽이는 임금과 달리 생명의 주님임을 드러내셨다 (루카 9,11-17; 요한 6,1-14 참조). 두 번에 걸쳐 빵의 기적을 전하는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첫 번째 기적이 타브가에서, 두 번째 기적이 벳사이다 근처 광야에서 행해졌다고 전한다(마태 15,32-39; 마르 8,1-10 참조). 요르단 강 주변은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시리아-아프리카 지구대의 일부이다. 그곳은 지질상 지각 작용이 활발하여 세월의 변형을 크게 받는다. 벳사이다 역시 그 운명을 비켜가지 못했다. 지진과 홍수 등으로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잊혀졌다. <자료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루카복음서 10, 13>

벳사이다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 사도의 고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도시에서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간택하기도 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절반이 이 벳사이다 출신입니다. 또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기적을 드러내시면서 소경을 고쳐 주기도 하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곳도 바로 벳사이다였습니다. 그만큼 이 도시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던 곳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 예수님께서는 무척 안타까워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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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실 때 그 고을에 의인 다섯 명만 있어도 진노를 거두겠다고 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러한 주님의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그분의 자비를 청했던 것입니다. 자비의 주님께서 왜 불행을 언급하셨을까요?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날부터 이날까지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예사로 여겼습니다. ...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예언자들의 온갖 말씀을 거슬러,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른 신들을 섬기고 주 우리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저마다 제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바룩서 1, 19, 21-22>




바리사이들의 누룩은 언제나 예수님께 하늘에서오는 표징을 요구하며 주님(말씀)을 의심하고 시험하며 주님의 말씀을 거스렸다.  

헤로데의 누룩은 자신의 탐욕스런 마음에 따라 그리스도의 오심(말씀과의 결합)을 반대하여 죄악에 대한 분별이 없어 결국 무죄한 아기들을 살해하는 죄악을 범하게 되었다

오늘 이 세대에서도 자기 안에 예수님께 대한 표징을 요구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한다. 또한 헤로데 처럼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오심(육화된 말씀의 삶과 말씀속에 진리의 성령께서 활동)을 의심하고 부정하며 거부하고 있는지 잘 살펴 보아야 한다.

주님께 대한 표징을 시험한다거나 주님의 오심을 제 스스로 거스린다면 그들과 똑같은 누룩과 벳사이다에 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말씀, 성체)와 결합하지 않고
"나를 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루카복음서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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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적

하느님의 기적 중에서 가장 큰 기적은 사랑의 기적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이적에만 너무 집착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겸손한 마음, 가난한 마음, 그리스도의 모든 마음을 닮기를 바라셨던 것이었으며 오늘 이 시대에서 처럼 외적인 이적만을 바라는 심정에서 회개하기를 원하셨던 것은 아니셨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께서 보내는 예수님과 그분의 하늘나라의 말씀을 먼저 사랑하며 말씀의 믿음 바탕 위에서 '사람 사이를 거니시는' 인간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적 삶인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오래되지도 않은 이전 시대의 '가난한 약자'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가난한 약자'들은 이전의 시대가 아닌 지금의 시대 상황에서는 [ 비록 가진게 없다 할지라도 자신(혹은 삶)을 내어 줄 수 있는 것을 가난 ]이다 하고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가난한 약자'들은 정하여진게 아니다. 현재의 '가난한 약자'들은 진실로 가진게 없다 할지라도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람들이다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람은 참으로 '약자', '가난한 약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실 새로운 차원의 김수환 추기경님상을 이 시대는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가난한 약자 ["저희는 이웃들에게 우셋거리가 되고, 주위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놀림감이 되었나이다" 시편 79(78),1-2.3-5.8.9)]가 된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직접 일컬어 주신 "아버지의 사람"(거룩한 사람, 성인)들이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자들을 부유하게 하신" 이들이 된다 (루카, 마리아의 노래).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버리고(비록 가진게 없다 할지라도 자신을 내어주는) 제 십자가를 지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실천하는 '가난한 약자'의 강인한 삶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2009년, 추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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