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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의 영적인 삶은 부활된 신이 아니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6 조회수340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는...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꾸짖으시다. “......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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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고 가르치셨는데 베드로는 반박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부활'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몸소 나타나시기 전까지는 아무도 부활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안에 염두해 두지 않았다고 할 것입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도 어김없이 마찬가지입니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보다는 죽임을 당하여야 한다는 말이 더 자기 안에 와 닿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마치 현대의 우리들 생각과 전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알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듯이 지금 현대의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 보다는 예수님의 죽음이 먼저 와 닿는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죽음 뒤의 부활'은 사람의 이성으로써는 차마 믿기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부활을 이미 인식하고 있는 보통의 상태라면 죽음이라는 것은 잠시 지나는 시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베드로는 참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세상의 일들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은 불의한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가 그렇듯이 베드로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보아 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예수님의 죽음만 베드로와 우리들 귀에 크게 들립니다.

부활은 이해할 수 없지만 죽음은 이해를 합니다. 부활은 본 적이 없었지만 죽음은 날마다 보고 듣는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체험하지 않은 이상, 이성으로써는 도저히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활'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대에 사는 사람들도 하느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부활'은 저 멀리에 던져 버리고 베드로 처럼 세상의 일에 몰두하고자 합니다. 

불의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저 멀리 던져진 예수님의 부활을 인간이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끌어들여 인간의 부활로 이론적인 재구성을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위선의 맹신자들이 활개치는 광신적인 사회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이같은 말들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만이 거룩한 사람들인 것처럼 (세상에 나서지 않는) 나머지 사람들을 향해서 비난해 대는게 그대로 율법학자, 수석 사제들, 바리사이들과 같습니다. 

세상 사회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에 온갖 규정을 만들어 낸 율법의 장본인들이 지금의 현대에서는 불의한 세상 사회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에 온갖 규정들을 만들어 낸 이념의 장본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념의 죄인'과 '이념의 세리'와 '이념의 창녀'들과 같이 자신들의 눈에는 불의하고 맹신적이며 광신적인 이들은 예수님의 시대에서나 지금의 시대에서나 사회에서 비난받고 처단되어 사라져야 하기는 동일한 처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의 일'이고, 인간이 말하는 인간의 부활은 '사람의 일'입니다. '하느님의 일'에는 반드시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에는 단지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일에는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시는 부활은 없더라도 인간이 말하는 부활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느님 없이" 인간이 바로 '부활된 신'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생명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없이" 인간의 나라가 있고, 인간의 생명이 있으며, 인간의 사랑이 있고, 인간의 정의가 있으며, 인간의 진리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부활된 신'으로서 인간을 지배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예수님의 부활 그대로 입니다. "하느님 없이"가 아니라 <하느님 있어>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하느님 있어>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생명,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정의, 하느님의 진리가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 안에 한 인간에 불과한 인물, 인간 마리아의 아들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이신 분'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율법 세상이 아닌 이념 세상이, 비난해 대고 처단해야 할 상대자로 적대시하는 가난하고 비천한 보통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남아 있는 하늘 나라는 예수님의 부활 안에 있다는 것을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끝까지 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거기에 인간의 모든 고통도 온갖 눈물도 사라지고 없는 하느님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로 늘 깨어 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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