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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자의 모순구조를 찾는 이성 [무언의 말, 귀신이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7 조회수408 추천수0 반대(0) 신고


[ 말씀은 '글로 된 무언의 말'이 아니다  =>  이를 '귀신이다'고 말한다 ]


철학하는 사람은 '구조'를 살피는 사람이다고 말한다.
'구조'를 볼 수 없다면 철학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구조'에는 무엇이 있을까 ( 어떤 구조가 있을까 )
사회구조, 문화구조, 경제구조, 정치구조, 건축구조,
가정구조, 종교구조, 언어구조 (문자구조) 등등 가히 그 영역은 광대하다.

특히, 성경의 문지 구조를 찾고자 하는 철학도 있다.
신앙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앙의 영역이 아니고 철학의 영역이다.
의심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철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진리에 대한 의심이 없다면 철학은 멈추게 된다.
그러고 보면 철학으로 인식할 수 없는 신앙의 요소들은 맹신에 불과할 뿐이다.
철저하게 모순 구조를 살펴보고 난 다음에 (곧, 철학하고 난 다음에)
거짓이 아닌 참으로 인식될 때에만 맹신이 아니다고 판정한다.
철학하는 이들에게 <모순과 구조 그리고 의심>이 없다면
철학은 불가능하게 된다.
철학은 앎이 목적이다.
끝없이 (진실을 향해서) 의심해야만 철학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진실'의 앎에 도달하고자 하는데
'철학을 한다'는 양심이라는 '철학 양심'이 필요하다.

이 모든 <철학적 작업>을 신앙에 대입시키면
바로 철학의 변형 <신앙적 작업>이 되어진다.

철학적 작업에는 문자만 보인다.
'문자의 영'은 볼 수 없다.
신앙을 철학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이성이 필수적이고 중요시 하는 철학적 작업에서는
이성을 초월하는 '영'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성경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다.
역사의 한 인간일 뿐인 예수의 사상만 있을 뿐이다.
말씀이 아니라 문자일 뿐이다는 설명이다.
철학이 신앙의 가면을 쓰고
철학적 사유 곧 '의심'이
성경 문자의 구조적인 모순을 찾아
진실인가, 혹은 거짓인가를 판정내린다.
'의심' 없이는 철학을 할 수 없듯이
신앙 조차도 '의심' 없이는 할 수 없다고 대입시키는 것이다.
말씀이 아닌 오로지 문자로만 보면서
성경 문자의 모순 구조를 밝히는 작업은
말씀에 대한 신앙이 아닌 철학하는 작업인 것이다.

성경 말씀은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문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문자 속에서도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하신 '말씀의 영'(진리의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말씀'속의 성령을 인정할 수 없다.
이성으로 인식할 수 없는 '영'이기 때문이다. 
귀신으로 취급되어질 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이고 생명이다'고 하셨다. (요한복음서)
철학하는 이성에서는 '말씀 속의 영(진리의 성령)'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문자에만 매달리고 문자의 모순 구조를 밝히는 신학적(오히려 철학적) 작업이
신앙의 진지한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의심' 없이는 철학 양심에 따라 결코 철학할 수 없기에
신앙에서도 그(의심) 근본이 없을 수 없다. (숨길 수 없다)
마치 신학의 진지한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신학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자만을 (철학적으로) 취급가능 하기 때문이다.
철학하는 이성은 신학에서도 문자,
하느님의 말씀에서도 문자 밖에는 취급할 수 밖에 없다.
문자의 모순구조를 분석하고 진실과 거짓을 밝히고자 하는 
철학적 '의문'(의심)은 결코 신앙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영'으로 '영'을 인식해야 하는 신앙의 영역에서
철학하는 이성과 철학하는 의심은 적당하지 않다고 하겠다.

'신앙'의 문자에 대한 모순점을
'신학'의 문자를 통해서 가려낼 수 있는 이성은 
신앙의 '영'의 영역에는 결코 들어올 수 없다.
단지 귀신일 뿐이기 때문에
'말씀'의 출입은 허락되지 않는다.




<교리서 108>

그리스도교 신앙은 ‘경전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말씀’의 종교이다.
그 말씀은 글로 된 무언의 말이 아닌, 사람이 되시어 살아 계신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 진리 = "인간 이성에 자명(自明)한 자연적 진리가 아니고, 신앙으로 받아들인 초자연적 진리이다" ///  신학 = "신학은 신앙으로서 수용한 계시를 신앙의 지도를 받는 이성으로서 음미하는 노력이며, 철학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이성의 빛만으로 종교를 연구하는 종교철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  "계시를 철학으로써만 관찰하는 종교철학이 아니므로 인간적 논리를 최후 근거로 하지 않는다."

<교리서 157> 신앙은 확실한 것이며, 그것이 거짓 없으신 하느님의 말씀 자체에 근거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인식보다 더 확실하다. 물론 계시된 진리들이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에 비추어 모호하게 보일 수는 있으나 “자연적 이성의 빛이 주는 확실성보다 하느님의 빛이 주는 확실성이 더 크다.

<교리서 108> 그리스도교 신앙은 ‘경전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말씀’의 종교이다. 그 말씀은 “글로 된 무언의 말이 아닌, 사람이 되시어 살아 계신 ‘말씀’”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죽은 문자로 머물지 않으려면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성경을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한다.
 

말씀이 [ '문자'로서만 인정하고, '영'으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귀신이다) ] 이들에게는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 "글로 된 무언의 말이 아니다"를 귀신이다고 취급한다. [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성경을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한다" ] ..... 신앙이 아닌, 이성으로써는 '계시의 빛'을 이해할 수 있기는 힘들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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