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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사의 예수님은 복음의 그리스도다 [예수님과 복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7 조회수362 추천수0 반대(0) 신고


" ...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마르코 8, 35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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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만에 대한 말씀이 아니시다.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시기도 하다. 예수님과 복음 말씀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복음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면 예수님께서도 그를 부끄럽게 여기실 것이다고 일러 가르쳐 주신다.

인간의 역사성에 몰입되어 있는 사람은 역사의 초월성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한다. 몰입이라는 것은 대단한 아집과도 같다. 그래서 현재성은 인식하지만 초월성에 대하여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온다는 초월성을 현재성으로 변형시켜 버리기 쉽상이다. 인식할 수 없는 초월성을 인식 가능한 현재성으로 바꾸어 버린다 할 것이다. 초월성은 현재의 인식 너머에 존재해 있기 때문에 대상의 변질이 쉽다.

교리서 677 교회는 그 죽음과 부활 안에서 주님을 따르는 이 마지막 파스카를 통과해야만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상승적인 발전에 따른 교회의 역사적 승리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신부를 하늘에서 내려보내실 하느님께서 악의 마지막 발악에 대해 승리하심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악의 반역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는, 지나갈 이 세상의 우주적인 마지막 동요가 있고 나서 최후의 심판의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


현재성에 몰입되어 빠져있으면 상기의 교회의 가르침을 인정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인식 가능한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초월적인 인식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초월적인 것은 지성에 있고 현재적인 것은 이성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흔히 역사는 진보하면서 발전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교회도 그같은 역사성에 따라 자연히 상승 발전하면서 결국에는 교회의 역사적 승리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된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악의 마지막 발악에 대해 승리하심으로써 당신의 신부(새 예루살렘)를 하늘에서 내려 보내시면서 교회는 하느님의 영광에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신앙의 복음을 초월적인 하늘에서 '끌어 내려' 역사적인 현재화로 변형시키는 결과 육신의 부활과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 맹신에 불과하다며 '부활된 영적인 삶'으로 이성의 '인식 가능'한 것으로만 취급해 버린다면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반대인 에수님과 복음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다.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은 예수님과 복음 말씀을 조롱하고 비웃는다는 의미와 같다.

"역사의 예수님과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서 분명히 고백해야 하는 일은 <복음의 예수님께서 바로 역사의 예수님>이시다는 사실의 고백이 신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역사의 예수님과 복음의 그리스도를 분리시켜 <다른 예수 - 상>을 만들어 내게 하는 복음의 그러한 재해석은 '악의 시도'에 불과하다. 역사 안에서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는 불의한 짓은 그만 두어야 한다.


역사의 예수님은 바로 복음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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