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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18일 야곱의 우물- 마르9, 2-13 묵상/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8 조회수345 추천수4 반대(0) 신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2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평원 위에 엎어진 종 모양의 타보르 산 정상에서 예수님은 본래의 영광스러운 당신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 변모 사건은 구약의 표징인 모세, 엘리야, 구름 속의 목소리, 광채 등을 통해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을 향해 있고 예수님한테서 완성되는 것임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이 증거는 부활까지 비밀에 붙여져야 합니다. 고통 받는 메시아로 수난과 죽임을 당할 때까지 제자들과 정치적 메시아니즘에 사로잡힌 사람한테 극심한 혼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도생활 초기 성체조배 시간에 체험되는 영적 위로가 너무 황홀하고, 공동체 자매들과 함께 주님 앞에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베드로처럼 ‘일상의 번잡함은 다 버리고 이렇게만 살면 얼마나 좋을까 ?’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안에 살고 있는지라 공동체 프로그램 · 사도직 · 소소한 일들이 경당을 나가면 줄을 이어 기다리고 있어 잰걸음으로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의 경당에 모신 예수님을 의식하고 싶어 단순한 일을 선호하고 시선과 정신을 고요하게 하려고 제 의지로 애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지도해 주셨던 분은 산을 내려와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씀이 참으로 씁쓸한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구나 ‘거룩한 사람’ ( 요한 17,18 – 19 )이 되기 전에 자신의 한계를 보기 위해 산을 내려오는 체험을 하도록 초대받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타보르 산 정상에서 산 아래로, 북쪽 지역민들의 환대를 뒤로하고 남쪽 예루살렘 지도자와 백성으로부터 버림받고 제물이 되시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신 것’ 같이 ( 요한 17,4 )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민순 수녀(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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