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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행(修行)과 관상(觀想) - 2.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8 조회수38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2.2.18 연중 제6주간 토요일 야고3,1-10 마르9,2-13

 

 

 

 

 




수행(修行)과 관상(觀想)

 

 

 

 

 



수행의 열매가 관상이요 관상의 열매가 순수와 열정입니다.

수행과 관상만이 우리의 육적인 모두를 다스리고 길들일 수 있습니다.

 


영육의 정화와 성화, 치유에도 수행과 관상만한 것이 없습니다.

 


오늘은 수행과 관상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절망, 실망, 원망의 삼망에 이어

역시 사람을 망가뜨리는 삼끝이 생각납니다.

 


입에 담기에 거북스러워 주저했습니다만

그 충격적 효과가 대단해 오늘은 공개합니다.

 


수 십 년 전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하던 중

한 교사가 던진 말이 오늘까지 생생합니다.

 


‘사람의 신세를 조지는 것에 세끝이 있다. 혀끝, 손끝, 좆끝이다.’

 


웬 만큼 산 장년의 남자들에게는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무분별한 말을 내쏟는 혀,

도박이나 노름을 즐기는 손,

무절제한 성생활의 쾌락을 탐하는 좆 등

세끝을 잘못 놀려 패가망신한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세끝만 잘 다스린다면 무난한 인생일 것입니다.


이래서 수행과 관상입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품위 있는 삶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오늘 세끝 중 주로 혀끝에 대해 나눕니다.

세상에 말 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혀끝을 잘 다스려 말에 실수 없는 이라면

완덕에 도달한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속된 말로 일 잘해 놓고 입으로 다 까먹는 다는 말도 있습니다.

 

위로의 다정한 말을 하는 혀가 있는가 하면

비수와 같이 마음에 상처를 내는 혀도 있습니다.

 


맛을 보는 혀는 또 얼마나 간사한지요.

이래저래 혀는 골치 덩어리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이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누가 말을 한다고 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그는 자기의 온 몸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이런 완전한 사람은 몇이나 되겠습니까?

 


손끝이나 좆끝은 힘 좋은 시절 한 때 일수 있지만

혀끝의 말은 평생 관리 대상입니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복종하게 만들면 그 온몸을 조절할 수 있으니

이래서 항구한 수행입니다.

 


배가 아무리 크고 또 거센 바람에 떠밀려도

키잡이의 의도에 따라 작은 키로 조종되듯 혀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아주 작은 불이 큰 숲을 태워버리듯

혀도 아주 작은 지체에 지나지 않지만

인생행로를 불태우며 온몸을 더럽힐 수 있습니다.

 


비단 자기 하나 뿐 아니라

공동체를 혼란과 분열, 불화로 불태울 수 있고 더럽힐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악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참 중요한 평생과제가 혀를 길들이는 수행임을 깨닫습니다.


혀끝, 손끝, 좆끝은 무죄합니다.

이 육신의 작은 지체들은 마음의 도구일 뿐입니다.

 

마음 따라 가는 육신의 지체들이기에

마음이 순화되고 성화되면 더 이상 죄의 지체가 되지 않습니다.

 


원망, 불평하던 혀는 찬미와 감사의 혀가 되고

노름하고 폭력을 가하던 손은 기도하는 손, 일하는 손이 됩니다.

 


이래서 수행과 관상입니다.

 


1독서에 대한 답이 오늘 복음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수행생활에 전념하던 세 제자들

주님의 지도하에 산상 관상 피정을 갖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주님과 깊은 친교를 이뤘던 주님의 최측근 제자들임이 분명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충실히 따랐던 세 제자들에게

관상 신비 체험을 선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관상신비체험을 통해

주님을 만날 때 정화되고 성화되고 치유되는 마음입니다.

 


비상한 관상체험이 아니라

매일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 적절한 시기의 피정 등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관상신비체험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느님은 관상신비체험의 감미로움에 안주하려는 제자들에게

즉시 당신 아드님의 말에 순종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수행 역시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합니다.

 


끊임없는 수행과 관상체험을 통해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는 마음이요 깊어지고 넓어지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에서 샘솟는 열정의 사랑이 항구한 수행생활의 원천이 됩니다.

 

예수님은 산상피정 후 내려오실 때


제자들에게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고

제자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합니다.

 


신비체험은 숨겨 둔 보물처럼 고이 간직해 두는 것이 지혜입니다.

 

고결한 영혼의 특징은 담아두는 능력에 있다 합니다.

 


황홀한 신비체험뿐 아니라 이런저런 부정적 체험들도 마음에 담아 둘 때,

성령께서 발효시켜 주시어 적절한 때 향기로운 말로 쏟아내게 하십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 은총으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깊고 넓게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 육신의 지체들을 당신의 거룩한 도구로 쓰십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 없으리라.”(시편34,6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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