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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죄인에게 항복하소서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9 조회수498 추천수7 반대(0) 신고



연중 7주일 2012. 2.19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 2,1-12


 

 

  용서하시는 주님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시간 용서하시는 주님을 만남으로써 기쁨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연약함은 고통을 통해서 잘 드러납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이 베드로 할아버지를 기억합니다. 당시72세 이셨는데 위암으로 고통 받고 계셨습니다. 힘에 겨워하시다가도 고비를 넘기시곤 꼭 전화를 하셔서 고해성사를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안 그러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렸습니다. 하면서 고해성사를 청하셨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고통을 넘기시곤 또 성사를 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거룩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 옆에서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은 더 큰 은총입니다.




자기 옆에 중풍병자가 있으면 그것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골치 덩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사실 골치 덩이와 함께 있는 사람도 은총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희생을 바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고 그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지붕까지 걷어내면서 환자의 치유를 청하는 이들의 극성스런 행동을 봅니다. 그러나 그만큼 간절하게 매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환자를 데려온 사람들의 정성과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그 청을 절대 거절하지 않으신다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부족하여 기도를 쉽게 중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또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기도를 하지 않는 영혼은 중풍 병에 걸렸거나 손발이 부자유스럽게 된 사람과 같아서, 손과 발에게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듣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만약에 이런 영혼들이 그 커다란 비참을 깨닫지 못하고, 따라서 스스로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롯의 아내가 고개를 돌리다가 소금 기둥이 된 것처럼 자기한테서 머리를 돌린 탓으로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리고 말 것”(영혼의 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중풍환자, 즉 영적인 감각을 상실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중단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접하고도 아무런 깨달음을 갖지 못하고 은총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장애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읽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거나 또 설령 읽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듣고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상태가 중풍환자나 다름없습니다.




사람들은 환자를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예수님께 내려 보내는 수고 끝에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마르2,5) 하시며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체험하였으니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골치 덩이라고 생각되었던 중풍병자를 통해 주님을 만났으니 그는 골치 덩이가 아니라 오히려 복덩이였습니다. 물론 환자는 병이 나았으니 얼마나 큰 은총이겠습니까?




이사야서 43장 25절을 보면 “내가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마르2,5)하심으로써 자유를 주십니다. 죄의 올가미를 거두시고 중풍의 외적인 병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리고 중풍병자가 골치 덩이가 아니라 은총의 도구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너무 긴장하거나 마음이 꼬이면 몸이 부자연스럽거나 행동이 경직되기 쉽습니다. 마비가 옵니다. 그렇다면 내면의 상태를 먼저 풀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죄를 용서받았다.”하시며 원인치료를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수와 잘못, 허물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고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이라는 것을 감히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나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기엔 분에 넘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그 장애를 거두어 주시는 분, 마음의 중풍 병을 앓고 있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저를 고쳐 주소서. 주님께 죄를 지었나이다”(시편41,4).하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가끔 고해성사를 보러 오신 어르신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시고는 대뜸 “신부는 죄인에게 항복하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신부는 죄인에게 강복하소서.” 라는 말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소리가 필요합니다. 신부도 죄인임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죄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고해실에서도 큰 소리 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야말로 죄인들에게 항복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시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가운데에서도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23,34).하고 죄인들을 위해서 기도 하셨습니다. 죄인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주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으니 우리도 누가 나를 모함하거나 빈정거리고 험담하며 미워한다 하더라도 분하고 야속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더 정성을 모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모른다.’고 했듯이 그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악의 세력이 물리쳐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로마7,12)하고 그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을 모시고 있음을 기뻐하며 나도 우리의 이웃에게 용서와 화해의 기쁨을 줄 수 있는 한 주간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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