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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베네딕토16세의 신학적 해석 [말씀의 영]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1 조회수356 추천수0 반대(0) 신고


역사비평적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추구하는 '신학적 해석' 이란


<1> 성경 전체의 단일성을 그리고 한 방향이 있다.

<2> 성경의 말씀을 인간적 언어이지만 안에 더 큰 무엇이 울려나오고 그 안에 내적인 개방성과 역동성이 현존하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말씀으로 읽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언어는 저자가 당시 순간 직접적으로 의식했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깊이 있는 무엇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신앙 역사의 과정에서 무르익은 말들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3> 성경의 주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제한다. 성경의 낱권마다 저자가 있다는 것 말고도 이 저자들이 속해 있으며 성경 말씀이 그 안에서 자라나고 살아 움직이는 하느님 백성, 곧 교회가 더욱 더 내밀한 저자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 백성에게 직접 말씀을 건네시고 ..... 이 삼중의 저자가 성경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문자적 의미' 와 '더 깊은 가치'


역사비평적 방법이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밝히는데 주력한다면, 신학적 해석은 이 방법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 텍스트의 한층 더 깊은 의미를 헤아리도록 촉구한다. ....

교황은 <주님의 말씀>에서도 건전한 교회 전통 안에는 언제나 '문자' 연구에 대한 사랑이 면면히 내려왔음을 상기하면서 ....처음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이 방법의 장점과 미덕이 있다고 말한다. ...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어너로 기록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 성경 해석의 기본적인 차원에 속한다. ....

그러나 성경 해석이 문자적 의미를 넘어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참된 해석에 이를 수 있다. 성경 말씀은 인간적 언어라는 일차적 차원 말고도
성령의 영감이 깃든 더 깊은 차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차원을 교황은 "내적으로 '더 깊은' 가치"라 부르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성경의 영성적 의미'라 불리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

교회의 오랜 전통은 현대 주석학이 사용하는 언어학적 통찰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성경 말씀에 여러 차원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곧 성경의 이중적 또는 사중적 의미가 그것이다. 교황은 말씀의 이로한 여러 의미들이 "각기 병렬적으로 동떨어진 개별 의미들이 아니라, 순간을 초월하는 하나의 말씀이 지닌 여러 차원들"임을 강조한다. ....

참된 성경 해석은 다시 성령 안에서 문자를 초월하여 더 깊은 의미로 나아가는 일일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교황은 <주님의 말씀>에서도 '문자'를 초월하여 영으로 건너갈 필요성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한다.  


 
.................  이상 지은이 ; 교의신학 교수 ㅡ 000 신부 ...............


 
제목에서의 < 말씀(문자)의 영 >은 게시자가 그동안 주장해 온 언어입니다.
< 내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요한복음서) >에서 영은 '진리의 성령'이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게시자 글 지난 주에서 '한 입으로 숨겨진 두 마음의 말' (자유게시판)은 <상기 본문의 성경의 이중적
또는 사중적 의미, 순간을 초월하는 하나의 말씀이 지닌 여러 차원들>에 해당될 것입니다.

저의 글은 대체로 적고 난 다음에 증명해 가는 식임을 알려 드립니다.







<지난 글>



구원적 계시관 (2차바티칸공의회헌장) / 새로운 지평


[ 가톨릭대사전 '성전'을 검색하시면 아래의 전체 본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

[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가톨릭 신학자들은,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문을 계시의 두 가지 원천설 주장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본다. 성서와 성전을 계시의 두 원천이라는 식으로 물량적인 이해를 하게 된 것은, 계시를 일련의 명제적 진리들로 환원될 수 있는 것처럼 보았던 데에서 비롯되었었다. 오늘날 계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이런 식의 명제적 계시관을 지양하고, 인격체간의 대화 내지 만남에서 그 이해 모형을 찾고 있는 사조 속에서는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갈라진다.

이 새로운 이해지평 안에서, 계시는 우선적으로 지금 당장 신앙으로써 성삼이신 하느님의 삶 안으로 들어오라고 불러주시는 은총에 찬 초대로 이해된다. ... 일상생활에서 겪는 잡다한 종류의 어려움에 대응해 나가는 가운데, 하느님으로부터 초대의 소리를 들을 때, 현실적으로 그 앞에 다가오는 것이다. (구원적 계시)  이와 같이 한 인간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으로서의 계시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때 그때에 '발생'하는 것이며 이런 뜻에서는 그것이 책(성서)이나 성전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



<저의 주장과 관련>

[ 구원적 계시관 ]

제2차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에로의 부르심" "그분 성령의 살아있는 전통"

인간이 말씀을 해석하는게 아니라 말씀께서 인간(삶)을 해석한다. (저의 주장)
"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현실화" (상기 본문)

(교리서) 그리스도교는 '경전'의 종교가 아니다. 살아계신 '말씀'의 종교이다.
'말씀' 속의 영(진리의 성령)과 인격체간의 만남 (
"내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요한복음서)
" 명제적 계시관을 지양하고, 인격체간의 대화 내지 만남 " (상기 본문)

<교리서 108>
그리스도교 신앙은 ‘경전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말씀’의 종교이다.
그 말씀은 “글로 된 무언의 말이 아닌, 사람이 되시어 살아 계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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