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기독교회와 무관/미륵예수/육신부활없다 [이리떼의 유혹]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1 조회수348 추천수0 반대(0) 신고



역사비평적 방법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데 베네딕토16세 교황님께서 지적하는 그 한계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역사비평적 방법이 텍스트가 생겨난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저자의 의도를 밝혀내려는 노력인 한, 말씀을 과거의 것으로 탐구할 수 있을 뿐 '지금 현재적인'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 방법은 자신의 척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둘째, 역사비평적 방법은 성경의 말씀을 인간의 말로 놓고 다루어야만 한다. 이 방법을 통해서도 성경 말씀이 지닌 깊은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으로서의 인간 언어다.

셋째, 역사비평적 방법은 성경 전체가 하나의 단일성을 이룬다는 사실을 역사적인 기본자료로 고려하지 않는다. 각각의 낱권을 개별적인 과거의 문헌들로만 대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역사비평적 방법의 강점이지만 동시에 한계이며, 결국 이 때문에 역사비평적 방법은 가설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


역사비평적 주석은 역사적 이성으로 하여금 과거 일어난 사건과 텍스트 사이의 관계 및 전승 과정을 고찰하도록 한다. 하지만 인간 언어와 역사적 맥락을 뚫고 들어가 더 깊은 차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이 필요한데, 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신앙이 신학적 해석의 기초를 이룬다.

신앙의 확신을 바탕으로 역사적 방법을 사용할 때만 이 방법은 자신의 한게를 뛰어넘어 더 깊고 큰 것을 바라보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달리 말해, 베네딕토 16세에 의하면 참된 해석학은 순전히 역사적 방법으로부터 산출해 낼 수 없다. 그렇다고 신앙이 이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성으로 하여금 성경의 내적인 단일성을 볼 수 있게 만들고...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

사실 계시 사건의 전모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기초한 역사적 확실성과 신앙에 기초한 신앙적 확실성이 각기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그 둘은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 신앙의 확실성이 단지 어떤 이상이나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공허할 뿐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확실성은 역사적 (사건의) 확실성과 다르며 다른 원천을 갖고 있다.

신앙의 확실성은 역사적 사건들, 이를테면 예수의 활동과 죽음과 부활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는 이미 신학적으로 해석된 확실성이다. 이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서)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고 말하지 않고, (신학적으로 해석된) 우리의 죄 때문에 성경 말씀대로 돌아가셨다고,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건이 신앙과 결합한 좋은 예일 것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와 라칭거-베네딕토 16세의 <나자렛 예수>는 모두 예수 생애의 중요한 순간들을 다룬다. 이는 물론 양자가 공통의 텍스트인 성경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법론의 차이는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 라칭거-베네딕토16세의 <나자렛 예수>가 역사비평적 방법의 결과와 통찰들을 고려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인 신학적 해석을 통해 보여주려는 예수-상이자 처음부터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관점은 곧, '복음서의 예수'가 실제 예수, 원래 의미에서 '역사적 예수'라는 것이다. 그는 이 예수의 모습이 지난 수 십년간 우리가 부딪쳐 왔던 (역사비평적) 재구성들 보다도 훨씬 더 논리적이고, 역사적으로 고찰해서도 훨씬 더 납득할만하다고 확신한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각 단계마다 다양한 예수-상들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자유주의적인 첫번째 단계에서 등장한 수많은 예수-상들은 결국 저자 자신의 윤리적 이상을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새로운 탐구>인 두번째 단계에서도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맑스주의적, 유다적, 토착화적 예수 .... 가설 등도 모두 다시 반복되어 나타났다.  현재 <제3의 탐구>가 강조해 보여주는 예수-상들은 사회적 혁명의 주동자로서의 예수, .....가 그것이다.

여기서 아직도 '가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다양한 예수-상들이 근본적으로 기대고 있는 출발점에는 여전히 ... 예수의 부활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하며, 제자들과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론은 부활 신앙에 의해 역사적 예수를 '신화화 결과'라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에 따르면 " (역사적 예수연구의) 이러한 인상은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적인 의식 속에도 깊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데" ... "그분의 모습이란 그분의 신성에 대한 신앙에 의해 나중에 추가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히 복음사가들이나 바오로에 의해 후대에 채색된 전승들을 벗겨내고, 지상에서 활동하던 부활 이전의 예수의 본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으로 대두한다.




<이상;  교의신학 교수 ㅡ 000 신부님>




추신;  상기의 "토착화적 예수-상" => 저는 '미륵예수'라며 게시한 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교회와 전혀 무관하다는 자게판에서 어떤 분의 주장.

'육신의 부활과 하느님의 나라는 없다'  이는 맹신이고 광신이다 =>  000 신부 주장.



잠시 쉽니다. 혹은 내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