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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헛된 명예!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2 조회수806 추천수14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재의 수요일 - 헛된 명예!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던 핫산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현자를 찾아가 그의 문하생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핫산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스승은 그가 아직도 속세에서 가지고 있던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핫산이 속해 있던 높은 계급의 특권이나 부의 잔재가 아직도 그의 의식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스승은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핫산아, 시장에 가서 양의 내장 40킬로그램만 사오도록 하여라. 그러나 반드시 등에 메고 돌아와야 한다.”
 

핫산은 즉시 마을의 한 쪽 끝에 있는 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내장을 산 핫산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장을 메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흘러내리는 핏물은 순식간에 핫산의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얼룩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몰골로 마을의 절반을 가로질러 돌아가야 하는 핫산은 난감한 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아직도 돈 많은 세력가로 알고 있었으므로 길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핫산은 무관한 척, 태연한 척 걷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욕감으로 얼룩져가고 있었습니다.
 

핫산이 힘겹게 사원으로 돌아왔을 때, 스승은 내장을 부엌으로 가져가서 요리사에게 전해주고 모든 제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스프를 끓이라고 지시했습니다. 얼마 후 스승은 핫산을 다시 불러 말했습니다.
 

“핫산아, 지금 당장 시장으로 가거라. 그리고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혹시 등에 짐승의 내장을 지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도록 해라.”
 

핫산은 스승이 시키는 대로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혹시 조금 전에 등에 짐승의 내장을 지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거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핫산이 사원으로 돌아오자 스승은 “이제 알겠느냐? 아무도 너를 보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너는 사람들이 형편없는 네 모습을 보고 너를 비웃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아무도 네 모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다만 네 스스로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네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았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스승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모든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마음껏 들어라. 이 스프는 핫산의 자존심과 명예로 만든 스프다.”

(참조: 다음카페, selfplus)

 
 

어떤 사람이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어 사람들에게 자신을 모함한다고 하며 매우 분개하여 저에게 한탄을 하시는 분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그냥 흘려버리라고 해도, ‘그 꾸며낸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만큼 불행한 삶도 없습니다. 연예인들이 많이 자살하는 이유는 단 몇 명이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거나, 아니면 명예가 줄어들까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경찰 조사를 받던 정치인들이 한강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위의 예화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생각해주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지 참으로 나를 사랑해 그러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합니다. 참으로 나를 알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모함을 들어도 콧방귀도 안 뀔 것입니다. 그렇게 쉽게 바뀌는 사람들의 생각에 왜 목숨을 거는 것일까요?

 
 

제가 어렸을 때 친구 생일 날 놀러갔다가 양말이 터져있는 것 때문에 창피해서 혼쭐이 났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을까요? 사실 내 자신도 그 때 함께했던 친구들이 누구였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대상을 상대로 아직도 창피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다 명예욕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에게 더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려고 하기에 혼자 힘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한 번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죄를 지을 때 하느님이 함께 계시지 않은 것처럼 나와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시선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다윗도 우리야의 아내를 탐할 때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우리 또한 죄를 지을 때 바로 곁에 계신 하느님과 수호천사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죄를 짓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시선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서 왜 사람의 시선엔 그렇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보상심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심은 이미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죄인이란 평가를 내립니다. 그러나 그런 평가를 받고 사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로부터 실추된 명예를 다른 사람들에게서라도 더 좋은 평가를 받아 채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교만이라는 원죄의 굴레를 쓰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의 명예에 더 치중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주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무엇이 채워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이기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이기적인 사람들의 좋은 평가에 목을 거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선 사순절에 행해야 할 그 유명한 세 가지 권고사항이 나옵니다. 바로 “기도, 단식, 자선”입니다. 인간이 죽여야 할 것은 세 가지 죄의 뿌리, 즉 “교만, 성욕, 돈”입니다. 즉, ‘기도’는 ‘겸손’의 표지이고 ‘단식’은 ‘육체’를 이기기 위한 것이며 ‘자선’은 ‘돈’의 욕심을 이기는 행위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기도 할 수 없고 육적인 사람이 단식을 좋아할 이유가 없으며 욕심 많은 사람이 자선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도와 단식, 자선을 베풀 때 남이 모르게, 아니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통해 찾아야 하는 더 중요한 것이 하느님의 ‘현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 남에게 보이려 산다면 이미 하느님의 시선을 피해 죄를 지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평가에 치중하는 만큼 하느님께는 안 좋은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다시 하느님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거꾸로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 신경을 줄여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은 이미 죄가 있고 교만하여 작은 일에도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그 분노는 건강을 악화시키고 노화를 촉진시키는 호르몬을 생성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주름과 피부가 안 좋아져 빨리 늙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몸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연유도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몸이 썩지 않는 성인들이 많은데, 그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느님께만 잘 보이려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원죄의 결과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것이라면, 이제 사순을 시작하면서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합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고 효력이 있는 평가는 오로지 하느님께서 해 주시는 평가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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