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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4 조회수952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2월 24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Can the wedding guests mourn
as long as the bridegroom is with them?
The days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is taken away from them,
and then they will fast.”
(Mt.9,15)



제1독서 이사야 58,1-9ㄴ
복음 마태오 9,14-15

어제부터 저는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너무나 추워서 자전거 타는 것을 겨울 동안은 멈췄거든요. 그러나 이제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드디어 어제 거의 두 달 만에 자전거를 탔습니다.

생각보다 힘들더군요. 전에는 매일 40Km 이상을 탔는데, 오랫동안 쉬어서 그런지 전처럼 40Km 이상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은 목표로 삼았던 곳에 다다르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왔지요. 그렇다면 목적지에 가지 못했다고 기분이 안 좋았을까요? 아닙니다. 비록 목적지에는 가지 못해서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나를 위한 운동이기 때문에 중간까지 갔다 와도 좋은 것입니다.

얼마 전, 직장에서 한창 일해야 할 나이인 것 같은데 아직도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청년에게 “공부가 재미있나 봐요.”라고 말했지요. 그랬더니만 이 청년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신부님, 공부를 재미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괴롭기만 하지요.”

이 청년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 합격하기 위해서만 공부를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에게 공부는 괴로운 것이고, 합격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결과만을 집착하는 사람은 실제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해도 행복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과정 안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체험하는 사람만이 원하는 결과를 통해서도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이란 결과를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주님께서 주시는 한없는 사랑을 통해서 매 순간 간직하며 살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이 행복을 어디에서만 찾으려고 할까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통해서만 또한 이 세상의 기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이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뜻과 정 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단식이란 원래 속죄와 보속의 의미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이후 단식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단식을 합니다. 자신은 신앙심이 깊어서 이렇게 열심히 단식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으니 신앙심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이며,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가지고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요.

우리들은 과연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요? 주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행복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오늘을 행복하게 한다. 사랑의 힘은 무엇보다 세니까(최명란).


아직도 새벽에는 조금 춥네요.



칭찬
 

칭찬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받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칭찬을 잘 받지 못하면 칭찬을 하는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가 칭찬합니다. “오늘 정말 멋진 드레스를 입었네!”

여자가 당황해 하며 어색하게 대꾸하지요.

“드레스가 구식이라고 놀리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정말 아닌데..”

그러면 남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더듬게 되지요.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다시는 칭찬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칭찬을 받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반문하거나 당황한 채 조그만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식의 약간 항의조로 응답하기까지 합니다. 또 “뭐, 단지 운이 좋은 걸요.”라고 가볍게 받아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응하면 칭찬한 사람을 매우 부당하게 만들뿐 아니라 심지어 모욕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칭찬을 받으면, 곧바로 "정말 친절하시군요."라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고 하지요. 칭찬을 주고받는 것은 부메랑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부메랑을 던지면 공중에서 거의 180도 빗나간 다음에 치솟고는 던진 사람의 발 앞에 와서 떨어지지요. 이처럼 누군가가 당신에게 칭찬을 하면 좋은 감정이 칭찬을 한 사람에게 다시 돌아가도록 그냥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칭찬을 잘 하고 있으며, 또 칭찬을 잘 받고 있습니까? 칭찬 하는 것과 받는 것. 모두 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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