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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된 단식 - 2.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4 조회수553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2.2.24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58,1-9ㄴ 마태9,14-15

 

 

 

 

 




참된 단식

 

 

 

 

 



중요한 말은 한 글자라 하는데 '숨'과 '물'과 '밥'이 그러합니다.

숨 쉬어야, 물 마셔야, 밥 먹어야 사니 참 절실한 말입니다.

육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허약함을 절감케 하는 말입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겸손과 감사의 마음입니다.

 

오늘은 주로 밥과 관련하여 참된 단식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사는 것은 먹는 것이라 할 정도로 밥은 절대적입니다.

하여 먹는 재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말도 하곤 합니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의 여덟 가지 악덕의 첫 머리에 오는 것 역시

식욕의 탐식입니다.


식욕의 절제가 모든 절제의 기초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입에서 나오는 말의 절제와 입으로 먹는 밥의 절제보다

힘들고 중요한 수행은 없습니다.


진정 말의 실수가 없고 식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면

완덕에 도달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식사(食事) 역시 성사(聖事)입니다.

불교의 오관계의 기도가 우리의 사순시기 식사 전 기도가

식사를 성사로 만듭니다.

 

 

 

 

 


-오관계(五觀戒)

 

計功多少量彼來處(계공다소양피래처)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헤아려보니

 

忖己德行全缺應供(촌기덕행전결응공)

 

덕행이 부족한 나로서는 받기가 부끄럽네

 

放心離過貪等爲宗(방심이과탐등위종)

 

마음의 온갖 잘못과 욕심 버리고,

 

正思良藥爲療形枯(정사양약위료형고)

 

바른 생각으로 몸을 유지하는 양약으로 삼아

 

爲成道業應受此食(위성도업응수차식)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기도로 삼아

식사 전이나 미사 중 영성체전

속으로 되 뇌이며 기도로 바쳐도 은혜로울 것입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나이다.

  주여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우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의 사순시기 식사 전 기도 역시

육신의 빵과 더불어 말씀의 빵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기도문 역시 식사 전은 물론

미사 시 말씀과 성체를 모실 때 바치면 은혜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침묵처럼 단식도 절대적 가치는 아닙니다.

 
침묵이 필요한 것은

우울증 환자나 외롭게 살아가는 독거노인이 아니라

말 많은 이들에게 필요하듯

단식 역시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이들이 아닌

잘 먹고 사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침묵이나 단식 역시 사랑의 잣대로 분별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사랑과 정의의 실천이 병행할 때 참된 단식입니다.

참된 단식의 열매가 사랑과 정의의 실천입니다.


또 참된 단식은 저절로 기도와 자선으로 직결됨을 깨닫습니다.

 

단식을 통해 굶주림을 체험할 때

저절로 하느님께 대한 배고픔으로 직결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 기도할 것이며

배고픔의 체험을 통해 굶주린 이들에 대한 연민의 사랑으로

자선을 실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십 주야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느님과 머문 모세와,

역시 사십 주야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악마의 유혹을 말씀으로 이겨낸

예수님에게서 단식과 기도, 자비행이 하나로 통합됨을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집니다.

예수님이나 예언자들은 결코 단식을 절대화하지 않았습니다.

단식의 참 의미를 밝히고 실천하도록 진력했습니다.


사랑과 정의가 빠진 껍데기 헛된 단식을 질타한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참된 단식인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때

우리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우리의 상처는 곧 바로 아물게 되리라는 주님의 은혜로운 약속입니다.


복음의 주님 역시 타성에 젖은 단식이 아닌 적절한 때의 단식을 권합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타성적이고 의례적인 단식이 아니라

당신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상기하며

적절한 때 고난을 함께 하는 마음으로 단식하라는 말씀입니다.

 


하여 우리는 사순시기 재의 수요일 아침에 단식하였고

또 자발적으로 사순 시기나 적절한 때에 단식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참된 단식의 삶을 지향하는 우리들에게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 말씀과 성체의 생명의 빵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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