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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놀아주시지 않는 이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4 조회수729 추천수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재의 예식 후 토요일 - 놀아주시지 않는 이유

 


 

요즘 저희 교구 황창연 신부님의 강연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는데 강의가 내용도 좋고 너무 재미있게 말씀하셔서 저는 그 신부님과 같은 교구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 분은 일확천금을 노려서는 자기의 마음만 지옥으로 바뀐다고 말씀하십니다. 1+1은 2지 10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도 1+1이 100인 줄 알았을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평창 성 필립보 생태마을을 지으실 때의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그 분은 이제 성당을 도시가 아닌 시골에 세워서 5일제 근무로 바뀔 때 신자들이 주말에 쉴 곳을 마련해야 할 때임을 오래전부터 직감하시고, 기증받은 땅이 있는 평창에다가 생태마을을 짓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돈을 구할 길이 없어 무작정 선배 신부님들을 찾아보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호랑이 신부님이라고 소문난 김창린 필립보 신부님을 찾아갔는데, 그 신부님이 당신이 가지고 계시던 땅이 개발지로 편입되어 14억을 보상받았는데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하시며, 흔쾌히 그것을 다 주셨고, 3달 뒤에 다시 불러 그것으로는 모자랄 테니 장학기금으로 마련해 두셨던 10억도 함께 주셨다고 합니다. 또 그 신부님의 본당 신자들이 본당 신부님의 뜻을 따라 3억을 모아주었고 수원교구 후배 신부들이 3억을 모아주어 30억으로 시작해서 2년 만에 생태마을의 중요한 부분을 지었다고 합니다.

물론 더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돈도 더 필요했는데, 하루아침에 30억을 얻었던 황 신부님은 당신 말씀대로라면 1년 동안 돈 많은 과부만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도와줄 것 같으면서도 안 도와주고 안 도와주면서도 도와줄 것같이 말하는 바람에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테살 3, 10절의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바오로도 신세지기 싫어서 밤새 천막 짜는 일을 했는데 왜 땀을 흘려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크게 반성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된장, 간장, 청국장, 고추장 등을 팔고 피정을 지도해가며 땀으로 마을을 완성해가니 다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땀을 흘리지 않고 일확천금을 만지려고 하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고 하십니다. 누가 마음을 괴롭게 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겠습니까? 그분은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 일을 하시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십니다.

 

오늘 세리 레위와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대립해서 나옵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부자들입니다. 레위는 세리로서 자국민들의 돈을 뜯어 로마에 충성하면서 자신도 부와 쾌락을 얻는 죄인 중의 죄인으로 취급되던 사람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많은 농토를 지닌 사람들이 많았고, 율법학자들도 모세의 율법을 해석해주며 부와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와 그의 친구 세리들과 식사를 함께 하십니다. 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과는 어울리지 않으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레위처럼 “나를 따라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 분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레위는 마태오라고 여겨집니다. 레위는 돈과 쾌락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줄 것 같으면서도 안 주고, 안 주면서도 줄 것 같은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으십니다. 단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를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들과 함께 즐기십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음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저도 이제는 차를 사야겠다싶어서 어제 중고차 한 대를 예약했습니다. 아는 분께 자그만 차를 부탁드렸는데, 약간 큰 차를 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며 한 대를 성당으로 가져오셨습니다. 일단 타보고 나니 마음이 혹 하였지만 돈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머니에게 달라고 하면 다 주시겠지만, 별로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너무 많이 달라고 하기가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형에게 전화해 돈을 좀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형은 즉각 자신이 돈을 더 줄 테니까 새 차로 조금 더 큰 것을 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데 어떻게 가족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가족은 부담 없이 부탁해도 모든 것을 다 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고 그래서 시간이 되면 가족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성소를 느꼈을 때, 1년간은 신학교 들어가기 싫다고 버텼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분을 따르기 싫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 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완전히 드리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저에게 특별한 은총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제가 그 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친교는 서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이 편한 사람들끼리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은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주시지 않는다거나, 깊은 친교를 느끼게 해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해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처럼 불만이 있지는 않나요? 그러면 먼저 우리가 레위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 눈치도 안보고 그 분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되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분과의 친교는 그 분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버릴 수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성당에서 봉사하라는 부르심에 아직도 주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분을 따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분과의 친교도 동시에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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