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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9 조회수995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2월 29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No sign will be given it,
except the sign of Jonah.
(lk.11,32)



제1독서 요나 3,1-10
복음 루카 11,29-32

어제 달력을 보니 2월 28일이더군요. 벌써 2월이 다 갔구나 하면서 3월 달 달력으로 바꾸려는 순간 하루가 더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즉,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윤달인 올해는 29일까지 있더군요. 그래서 1년 365일이 아니라, 올해는 366일입니다. 하루를 더 선물 받았다는 사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해야 할 일일까요?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 안에서 놀랍고 감사할 일이 참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면서 살고 있다는 것, 또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다는 것들 역시 놀랍고 감사할 일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렇게 놀랍고 감사할 일들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이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렇게 깜짝 놀랄만한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으로 일관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렸을 때 너무나 좋아했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계속해서 그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지요. 하지만 계속 들으면서 조금씩 질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이제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머리 속에서 잊혀 졌는데, 얼마 전 우연히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된 것입니다. 다시 옛날의 기억이 떠올려지면서 이 노래 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노래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듣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노래를 대하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을 마련해주신 주님께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멀리하는 우리들의 잘못된 마음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원망하고 불평하는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닫힌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보여주시는 표징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요.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끊임없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정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거든 자신들을 깜짝 놀라게 할 표징을 보여 달라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어떤 표징을 보았어도 믿지 않습니다. 표징이 약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주님의 표징의 문제가 아니라, 그 표징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 믿지 않는 그들의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표징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가 꼭 필요합니다. 즉, 요나 예언자의 설교를 통해 회개하여 구원을 얻은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과 같은 마음의 변화만이 표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과거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많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활짝 열고 바라보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 계속 주어지고 있는 많은 표징들을 절대 보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간주한다(쇼펜하우어).


어제 낮에 방문한 카페. 멋졌습니다.



너무 시끄러워서
 

어느 교회 정문에 예수님이 문 두드리시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린아이가 교회로 들어오면서 어린아이가 그 그림의 뜻을 묻자, 아버지는 예수님이 들어오시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고 설명하였지요.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도 또 그 다음 주일에도 계속 그 그림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왜 예수님이 아직도 못 들어가고 계시냐고 아버지에게 묻자,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고 하네요.

“아마도 교회 안에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예수님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듣고 있는가보다.”

우리 모두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우리 곁에서 함께 하고 싶어 하시는 예수님. 그러나 세상 것에 대한 지극한 관심으로 주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조용한 침묵 속에서 기도할 때만이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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