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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지상생활 아니다, 예수님 계시 [이성의 불신]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9 조회수344 추천수0 반대(0) 신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로 돌아오셨다는 것 아니다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육신을 지니고 부활하셨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루카 24,39).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로 돌아오셨다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자신의 육신을 지니고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이 육신은 “영적인 몸”(1코린 15,44)으로,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교리서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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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  가톨릭 사전

하느님이 계시한 진리를 신비하는데, 신비는 계시되기 이전에 그러한 신비가 일어나리라는 가능성을 인간의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으며, 계시된 이후에도 그 내적 본질을 유한한 지성을 가진 인간이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계시된 신비가 이해 불가능한 것은 그것이 무한의 존재이자 창조된 지식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인 하느님의 표현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신비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의 이해는 가능하다. 따라서
신자들의 주요 의무의 하나는 기도와 연구와 체험을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의 진리, 즉 신비에 대한 이해를 깊이고 넓히는 것이다. 

(1) 유한한 정신으로는 이성적으로 깨달을 수 없거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진리이며 신이 계시한 진리를 가리킨다. 삼위일체강생은 그런 신비에 해당한다. 신비는 불가해 한 것이지만 지성적으로 알아들을 수는 있다. 다시 말해 신비가 일단 계시
되면 거기에는 모순이 없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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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해한 다음에 신앙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하기 위하여 신앙한다(안셀름) ]는 말이 있다. 교회의 권위로써 가르치는 내용이 신자들의 이해에 앞서 규정되어야 한다고 전제된 상황에서, 신앙을 통해 그 내용을 이해하고 승인할 수 있다는 것이 교회의 대표적인 신앙개념이었다. 환언하여 신앙이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격적 신뢰"이라기 보다는 먼저 교회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지니게 되는 신앙이 그 다음 단계의 "신앙에 대한 이해"를 불러 일으킨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에 반대하여

[ 먼저 이해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신앙될 수 없다 (아벨라드) ]의 입장은 곧 교회에 의해 가르쳐지는 신앙의 내용이 이성적으로 먼저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을 수 없는 내용임을 지적한 것으로서 이성적 사고를 통한 신앙 개념의 수립에 관심을 지니는 아벨라드의 신학적 견해이다. (신학적 다양한 연구를 통한 사적인 견해) 교회가 가르치는 내용(즉, 교리)에 대한 지식이나 지적 승인 이전에 요청되는 "인격적 신뢰"를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종교분열자들(곧, 개신교)의 입장이었다. 
계몽주의(이념) 신학개념 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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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서 624>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히브 2,9).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 안에서 당신 아들이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도록”(1코린 15,3) 마련하셨을 뿐 아니라, ‘죽음을 맛보도록’, 곧 죽음의 상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순간과 부활하신 순간 사이에 그의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상태를 경험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상태는 그분께서 묻히시고 저승에 가신 신비이다.

<교리서 625>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무르심으로써, 부활 이전에 고통당할 수 있는 상태와 부활하신 현재의 영광스러운 상태 사이에 실제적인 연결 고리가 형성된다. 바로 ‘살아 계신’ 분, 곧 그리스도만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묵시 1,18).

<교리서> 하느님(성자)께서는 자연 질서에 따라 죽음이 영혼과 육신을 갈라놓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 그러나 스스로 삶과 죽음이 만나는 장소가 되시고자, 부활로써 육신과 영혼을 다시 결합시키셨다. 이는 죽음으로 생기는 자연 분해를 멈추게 하시고, 당신 스스로 분리된 부분들을 위한 결합의 근원이 되심으로써 이루어졌다.

<교리서 639>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는 신약 성경이 증언하듯이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들을 보여 주는 실제 사건이다.

<교리서 644> 부활이 사도들의 신앙의 (또는 경솔한 신앙의) 산물이었다는 가설은 신빙성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부활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 하느님 은총의 작용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다.

<교리서 2816> 하느님 나라는 우리보다 먼저 있다. 그 나라는 강생하신 ‘말씀’을 통해서 다가왔으며, 복음 전체를 통하여 선포되었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도래하였다. 하느님 나라는 최후의 만찬 이래, 성찬례 안에서도
우리 가운데 펼쳐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를 당신 아버지께 드릴 때, 하느님 나라는 영광 중에 오게 될 것이다.
 
<교리서 1016> 죽음을 통하여 영혼은 육신과 분리되지만,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변화된 육신을 영혼과 다시 결합시키심으로써 우리 육신에게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을 돌려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영원히 사시는 것처럼 우리 모두도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다.

교리서 1006> “죽음 앞에서 인간 운명의 수수께끼는 절정에 이른다.” 어떤 의미에서 육체의 죽음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사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죽음은 “죄가 주는 품삯”(로마 6,23)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은 주님의 죽음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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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실제사건으로 계시된 진리 부활 ㅡ 지상 생활로 돌아오는게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을 물리적인 차원을 벗어난 어떤 것으로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며, ...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마르 16,14).  <교리서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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