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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혹스러운 어려움 자체를 감사의 도구로 삼자!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04 조회수304 추천수0 반대(0) 신고
5) 그분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감사

 (네 번째 여정 : 수난의 신비에 참여함)

 시편 107편에,
사람들이 자신의 죄 때문에 사경을 헤매며,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는 질병에 대한 경우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님을 향해 부르짖자,
그분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그들을 고쳐주십니다.

 반면, 예수님의 신비에서는 뚜렷이 구분되는
세 양식이 서로 연관되어 놀랍게 일치되어 있습니다.

 첫째, 외부의 도움으로 위기 상황이 극복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 자체가 감사를 드리는 것에 들어
있습니다.

둘째, 먼저 위험이 있고 그것을 제거해주시는
하느님의 기적이 개입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기적적으로 모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위험이, 즉 죽음 자체가 그 내부에서
해방의 도구로 변합니다.

 셋째, 히브리서에는,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이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승리의 도구로 쓰인 것이 죽음 자체
입니다.

그러므로 죽음 자체가 내부에서 변화되어 감사드리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며 그 감사을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감사드리는 희생제물로 되는 것,
바로 이것이 가장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드림이 해방시키는 도구로 소개되어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경우에서는 먼저 하느님께서 구원하시고,
이어서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순서가 통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감사를 드리는 것이 인간 그리스도를 성부께로부터 오는
사랑의 움직임에 숨김없이 드러나게 하여 그분께서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승리의 결정적인 요소는,
그러니까 처음부터 지니고 계셨던 감사드리는
자비로서의 태도입니다.

                         "사랑의 여정"
                  알베르 바노에 신부 지음

 묵상 :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실로 당혹스러운 경우를 맞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 닥친 쓰나미처럼 순간에 닥친
수난에 인간은 할 말을 잊어버립니다.

이에 이태리에서  일본계 어린이가
교황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셔서
아무런 죄도 없는 어린애들마저 죽음으로 몰아 가셨습니까?"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습니다.

 "나도 모르겠구나!

 잠시 여운을 두신 후에,

우리들이 이 어려운 일에 참고 견디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보는 도리밖에 없구나!~

그런 일안에는 분명 무슨 뜻이
있다는 것밖에는 대답을 할 수 없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입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이 세상의 삶을 누리는 것밖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가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소중한 하루입니다.

이 소중한 하루를
소중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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