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꿈의 현실화 - 3.4, 이수철 프란차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04 조회수41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3.4 사순 제2주일

 

창세22,1-2.9ㄱ.10-13.15-18 로마8,31ㄴ-34 마르9,2-10

 

 

 

 

 




꿈의 현실화

 

-초월, 추종, 변모-

 

 

 

 

 



꿈꾸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은 꿈꾸는 분입니다.

진정 믿는 이들은 꿈꾸는 사람입니다.

 


산 사람들이 꿈꾸지 죽은 사람은 꿈꾸지 못합니다.

꿈이 없는 삶은 죽은 삶입니다.

오늘의 불행은 많은 사람들이 꿈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꿈을 심어주고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본령입니다.

 

 


새벽 말씀 묵상 중 퍼뜩 떠오른 게 어제 복음 나누기 중 어느 수도형제의

‘오늘 복음은 베드로가 꼭 꿈꾸는 것 같다.’란 말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착안한 오늘 강론 주제 ‘꿈의 현실화’입니다.

 


사순시기, 4월 꽃피는 부활의 봄을 앞 둔 나무들,

마치 봄꿈을 꾸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말 그대로 꿈꾸는 나무들이요 꿈꾸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세 제자들의 예수님 변모체험은 그대로 꿈같은 초월체험입니다.

실감이 나지 않을 때 ‘꿈인가 생시인가’, ‘비몽사몽’이란 표현을 하기도

하고 덧없는 세월에 일장춘몽이란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 살다보면 삶과 꿈이 모호하게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하여 너무 행복할 때

이게 꿈이 아닌가 하여 제 살을 꼬집어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가 말하는 꿈은 개꿈이 아니라 참 꿈이요 하느님 꿈입니다.

아브라함, 바오로, 예수님 모두 하느님의 꿈꿨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우리 수도승들 역시 하느님을 꿈꾸는 사람들이요

믿는 이들 모두가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은 세 제자들이 하느님 꿈의 체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진짜 꿈입니다.

꿈을 꾸려면 개꿈이 아니라 이런 황홀한 하느님 꿈을 꿔야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공동으로 참 꿈을, 하느님 꿈을 꾸는 은총 가득한 시간입니다.


매일 일곱 번씩 공동성무일도 바치며

하느님 꿈을 꾸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혼자 꾸면 꿈이고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 합니다.

이렇게 함께 공동으로 하느님 꿈꾸는 미사은총이

오늘 지금 여기를 하늘나라로 현실화 시킵니다.

 


반대로 우리 역시 하느님의 꿈입니다.

하느님의 꿈이 현실화 되어 활짝 꽃으로 피어나 열매 맺은 아름다운 분이

아브라함, 바오로,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의 꿈이 그대로 현실화된 성인들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느님의 꿈이 성인들이며

가장 아름다운 하느님의 꿈이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의 꿈의 현실화 과정을 초월, 추종, 변모의 셋으로 나눠 묵상했습니다.

 

 

 


항구한 사랑 있어 주님의 초월 체험입니다.

 

사랑 있어 신비체험, 하느님 체험, 하느님 꿈입니다.

내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 사랑에 감동하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이런 초월체험은, 하느님 꿈은 말 그대로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정말 하느님을 꿈꾸고 싶다면, 체험하고 싶다면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사랑뿐이 길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십니다.

왜 그 많은 제자들을 두고 이 셋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을 까요.

이들의 당신 향한 사랑과 신뢰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제자들보다도 주님을 열렬히 사랑했던 제자들임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주님 마음에 들 때

주님은 적절한 때 높은 곳에서 당신을 체험케 하십니다.


높은 산이 상징하는바 일상의 모든 곳이요

진정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이들은

언제 어디나 하느님 체험의 높은 산이 됩니다.


다음 대목도 제자들의 주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면 늘 곁에 있고 싶기 마련입니다.

엉겁결에 나왔지만 잠재의식의 표출이요 진실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세 제자의 사랑을 확인하신 주님이십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신 것과 흡사합니다.


다음 대목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늘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심을 상징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어도

단 한 분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면

여전히 우리 삶은 외롭고 고달프고 공허합니다.

외로움의 숙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사랑하는 주님과 늘 함께 하는 삶입니다.


뼛속까지 하느님 사랑에 젖어있는 바오로 다음 고백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런 열렬한 하느님 사랑 있어 주님의 초월체험, 신비체험입니다.

사랑밖엔 신비초월체험에 이르는 길이 없습니다.

 

 

 



항구한 믿음 있어 주님을 추종합니다.

 

우리가 추종하는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증하신 분이십니다.

항구한 믿음으로 주님을 추종할 때

우리를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의 꿈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꿈을 100% 실현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순전히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세례 받을 실 때

예수님 뼛속 깊이 각인된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이 드는 아들이다.”

오늘 하느님은 제자들에게 당신 아드님의 신원을 새로이 각인시키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느님께 이르는 길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통하는 길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믿음으로 그분을 추종하는 것입니다.

 


어제 읽은 내용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 ‘누가 무엇으로 왜 세상을 만들었느냐?’

답은 하나입니다. ‘하느님이 말씀으로 좋아서 세상을 만드셨다.’-

 


하느님이 좋아서 말씀으로 만든 좋은 세상입니다.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세상을, 사람을 알 수 있는 신비의 열쇠, 마스터키는

바로 말씀뿐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때 만사는 순조롭습니다.

 

답은 주님의 말씀에 있는데 땅의 현실만 보기에 삶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대부분 사막 같은 일상입니다.

이 사막 같은 세상길을 밝혀주고 안내해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막이 빛나는 것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오아시스 때문이란 말도 있듯이

우리가 사막 같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우리 안에 숨겨진 보물인 주님의 초월신비체험 때문입니다.

 


매 주일 미사를 통한 주님의 꿈이, 주님의 신비체험이

숨겨진 내적 힘이 되어

주님의 말씀에 따른 믿음의 삶에 항구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항구한 희망 있어 주님을 닮은 변모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이분을 잊어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꿈은 주님의 추종으로 이어져야 하고

추종은 주님의 모습으로 변모됨으로 완성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삶의 여정은

주님을 닮아가는 변모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 제자들 앞에서 변모하신 예수님은

부활 영광의 예표이자 우리 미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과 40주야 지내며 대화를 나눴을 때

빛났던 모세의 얼굴도 생각납니다.

다 하느님을 닮아 빛났던 얼굴입니다.


주님을 닮은 얼굴이 바로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의 진면목입니다.

 

계속되는 사랑의 주님 신비체험으로,

말씀 따라 믿음으로 항구히 주님을 따를 때

점차 희망으로 변모되어 가는 우리 모습입니다.

 


참 신비한 것이 닮은 부부들의 모습입니다.

성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부부들 얼굴이 점차 닮아가는 것을 봅니다.


어느 화가가 그린 성인들의 얼굴이 비슷비슷하여

왜 얼굴이 이렇게 닮았느냐고 화가에게 물었다 합니다.

성령에 영감 받은 화가의 말입니다.

“성인들은 주님을 닮은 분들이라 이렇게 비슷한 것입니다.”

참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하늘나라 입장 시

하느님은 그 기준을 ‘당신 아드님을 얼마나 닮았나?’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하느님을 꿈꿨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주님을 추종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을 항구히 추종하며 주님께 희망을 두고 살 때

주님을 닮아 변모의 은총입니다.

 


사랑의 주님 초월체험, 믿음의 주님추종, 희망으로 주님을 닮은 변모를 통해

이뤄지는 꿈의 현실화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 모두 당신 변모를 체험케 함으로 당신을 닮게 하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