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제민 신부님의 부활관 - 결론 [ 죽음 숭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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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2-03-05 | 조회수1,01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이제민 신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교회가르침의 <영과 육의 재결합인 육신의 부활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세상을 떠나야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복음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이제민 신부는)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마저 ‘그분의 시체가 되살아난’ 것으로 여기고 이를 증명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예수님께서 ‘죽은 다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인생이 끝난 다음’ 사흘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죽음으로 내 인생은 모두 끝난다. 다시 살아나는 삶은 없다> <저승은 없고> <죽은 이들이 지하세계에서 부활을 기다리며 누워 있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상상일 뿐이다> <시체가 다시 살아나 영생을 누릴 수 없다> <인간은 사멸하는 육을 지닌 존재지만 불사불멸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영원한 존재이다> <‘사후’란 없다. ‘사후’의 세계는 생물학적인 목숨이 끝난 다음 펼쳐지는 세계가 아니다. ‘사후’는 ‘인생 다음’이 아니라 ‘인생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부활은 죽기 전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고, 죽기 전에 일어나야 할 사건이다> < (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그분은 당신 생의 마지막에 ‘당신을 죽인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신다 당신 자신을 죽이는 삶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
< 이제민 신부님 부활관 결론 > 영과 육의 재결합인 육신의 부활은 없다.
이같은 예수님의 육신의 부활도 믿지 않는다. 시체가 다시 살아나 영생(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다. 인간은 죽지 않는 불사불멸의 영원한 존재이다. 부활은 죽기 전, 인생에서 일어나야 할 사건이다 (그리하여)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ㅡ 죽기 전의 부활 <부활 생명이다> 곧 <부활의 삶> 이제민 신부님의 ( 죽기 전, 부활이 된 ) 부활관인 것이다 그리하여 부활 생명자는 (산 자는) 인생 중에서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이같은 성경과 교회가르침 하고는 다른 부활관은 결국 현세(세상의 현실)에 집착하는 대중들에게 <죽음 숭배>로 귀착되어질 것입니다. 세상 중심 = 현세 중심 [ 미신과 결합되어 신앙이 타락해 간다는 의미입니다. ] 멕시코의 '산타 무에르테'와 같은 <죽음의 성인, 죽음의 신>을 숭배하는 신앙 타락의 현상으로 변질되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 내세의 부활은 없고 ㅡ 오직 현세(현실 세상)만을 위해 ㅡ 자신을 죽이는 삶>이 중요시되기 때문입니다. /// '죽음 숭배'로 귀결 (진리를 저버리는 댓가 입니다) 소순태 (sunsoh) (2012/03/05) : [죽음으로 내 인생은 모두 끝난다. 다시 살아나는 삶은 없다.] <----- 여기서 말하는 "죽음"의 정의(definition)가 "생물학적 죽음" 즉 "유물론적 죽음"을 말한다고 할 때에, 특히, "죽고나면 끝이다" 라는,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활동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유물론적 현세주의/현세철학" 주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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