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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낯 설은 분 성령
작성자이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05 조회수594 추천수3 반대(0) 신고

낯 설은 분 성령.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얼마 후 까지는 제대가 전면 벽에 붙어 있었고 교우들은 사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사를 드렸다. 모두가 정면 벽을 향하였고 남녀가 따로 앉아다. 그리고 때가되어 제대가 사제와 교우들 중앙으로 모셔지고 제대에 모셔진 십자고상은 신부님 향하였고 교우들 쪽에서 보면 십자고상에 예수님이 없는 뒷면 십자가였다. 뭔가 빈 듯하였다.

 

또 당시에는 성호경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하였다. 언젠가 성신이 성령으로 바뀌었는데 성령이란 단어는 참 어색하였다. 지금에 와서 성신이란 말을 떠올려보면 또한 어색하기만 하다.

 

처음 보는 분들과 중요한 일로 대면하게 될 경우 친분이 없기에 참 어색하다. 이 어색함은 이산가족 찾기에서도 드러나는데 곧바로 혈족을 알아보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친부모를 만나면서도 친분과 확신이 없어 어색케 해 보이는 경우를 볼 수도 있다.

 

나는 하느님이신 아버지 성령을 부르면서도 낯 설은 분, 어색한분, 왠지 거부하고 싶은 감정을 갖았던 기억이 난다. 왠지 모르지만 모르면서도 거부하고 싶은 감정, 그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태중 교우이면서도 십계명을 내동댕이치고 살아온, 부드럽게 말해서 쉬는 교우로 살아 온지도 십 수 년을 넘겼다. 하느님을 버리고 떠난 큰 죄인인 나에게 주님의 눈길은 떠나지 않으셨고 그분의 사랑은 나를 당신 품으로 다시 불러주셨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성령께서 나의 힘이 되어주시고 모든 것을 깨우치는 원천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성령께서는 영으로 하느님을 뵙고 영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셨다.

 

나는 성령께서 함께하시며 나의 힘이 되어주신다는 믿음 없이 온전히 나의 생각과 나의 힘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해오다 지쳐 스스로 포기하였고 결국 평화 없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으면서 삼위 각 위격과 개별적으로 사랑과 친교를 나누지 못한, 아니 위격적으로 성부와 성자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몰랐던 나의신앙은 힘없는 나약한 신앙인이었으며 당연한 결과였다. 성령은 그저 귀로 흘릴 뿐이었으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예수님께서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성경 안에 충분히 말씀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한구절만 인용하자면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성령께서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분이시기에 예수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시기까지 하신단 말씀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하였지만 예수님께서 보내신 그분 과연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나는 믿고 체험적인가? 혹시! 낯 설은 분, 어색한분, 거부하고 싶은 분은 아닐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고 진리를 찾고 있지만 종교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 하느님께서 바라시지도 않는 성전(聖戰)과 분열과 대립 갈등을 격고 있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그 원인을 말씀의 결핍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묵상해 보았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도 계시를 믿지 않고 스스로 구도의 길을 찾아 수행의 어려움을 격고 있는 불교도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유교 등 많은 현자들안에서 계시말씀의 결핍상태.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를 기다리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배척) 유태인들의 위격적 친교의 결핍상태.

이슬람교 마호메트 교등의 계시의 결핍상태.

예수를 믿지만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성령세례 이전 제자들의 각 위격별 친교의 결핍상태.

삼위일체 교리가 신학적으로 정립된 현대교회 신자들의 각 위격별 친교의 결핍상태.

계시된 말씀의 잘못된 해석으로 분열된 종파 간에 말씀의 결핍상태. 그 결핍상태는 결과와 열매로서 드러나는데 그에 따른 세계적 흐름을 나름대로 분석해보았다.

 

순수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천주교 신자들의 각 위격별 친교의 결핍상태역시 각자 다르겠지만 어느 쪽으로 쏠리거나 전체적으로 균형 감각을 잃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며 예수님께서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뜻 안에는 삼위 일체 하느님 각 위격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으로도 알아들어야한다. 그것은 성경 안에 각 위격과 사람 간 역동적으로 역사(役事) 하심이 드러나고 있다. 곧 각 위격과 친교의 모델이신 성모님, 성령세례이후의 사도들, 바오로사도와 성인 성녀들의 성경기록을 살펴봄으로써 충분히 확인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성모님과 성인 성녀에 대한 지식은 많으면서 정작 하느님이신 성령께 대한 지식과 친분은 낯설고 어색함이 만연하다. 내가 그랬으니 지금도 참 후회스럽다.

 

삼위일체를 더욱 깊이알기위해서 성령과 친교를 통하여 인간의 지능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삼위일체 교리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었음은 내겐 체험적 사실이었고 누구나 성령의 불을 끄지 않는 한 하느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게 해주신다는 것을 지난 은총의 순간들을 성찰하며 성령과 함께 깊이 묵상해 보았다.

오소서 성령님! 성령님과 저의 친교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 아버지를 더욱 잘 알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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