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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묵상 - 변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05 조회수459 추천수6 반대(0) 신고

사진묵상 - 변화
                            이순의






가을이 되어 서울에 오면
찬물에 기름처럼 겉돌게 된다.
내 스스로 그런 마음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며
성당에도 가고
인사도 한다.
원래 몸 담았던 본당이 아니고
이사를 했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가을에는 산에서 내려와
동시에 받은 제안이 있다.
첫번째로는 여고 3학년 때 반장친구가 화장품을 내밀며
<인자 요것 쪼까 바르고 다녀도 괜찮어야. 내가 너를 생각하고 샀은께 절대로 거절허믄 안되아야. 꼭 발르고 댕겨라 잉>
우리끼리만 통하는 짙은 고향 사투리를 써 가며 건네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에는 아들녀석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치 눈물을 쏟을 것처럼 엄마를 처다보았다.
엄마 얼굴에 뭐가 묻어 있으면 다시 들어가서 씼고 나가자고 일렀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표정은 엄마 얼굴이 뭔가 잘못된 상황인 것만은 분명했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앉으니
아들녀석이 엄마의 머리통을 가슴에 끌어 안으며 말했다.
<엄마 나도 예쁜 엄마가 좋아. 그런데 너무 고생해서 까만 엄마는 이해를 하겠는데 왜 엄마의 머리 뒤에는 항상 벌어져서 불쌍해 보여? 다른 엄마들 머리통은 뒷통수가 수북한데 우리 엄마 머리는 큰 길이 나서 눌려가지고 너무 불쌍해 보여! 원인이 뭐예요? 대머리도 아닌데? 그걸 병원에가서 성형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53년동안
내 아들이 엄마의 뒤통수 머리털이 갈라져서 싫은! 
예쁜 엄마를 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먼저 친구가 준 화장품을 발라보았다.
그런데 흉칙해서 볼 수가 없었다.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얼굴에 발라보니
그 땀구멍 마다, 그 각질마다,
마치 고목나무 껍질에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내 얼굴이 흉칙해 보였다.
왜 안되지?
언니랑 새언니께 전화기를 연결하여 특강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실로 27년만의 충격이었으리라.
시집 오던 날에 예쁜 새색시는 그때 잊어버린 것들을 들추어
27년만에
중년이 된 나무껍질 같은 얼굴을 치장해 보겠다고 했으니.........

얼굴이 예쁘진 않아도
여학교시절 친구의 마음을 펴줄 정도가 되려면
1 - 시간이 겁나게 필요하다.
2 - 바쁜 일 말고, 부지런한 가꿈이 중요하다.
3 - 그 색을 입히기 위해서는 더 여러가지를 차곡차곡 바른 후라야 한다.
4 - 또 틈틈히 맛사지도 해 줘야하고
5 - 제일 중요한 것은 산골에 가서 땡볕에 태우는 일을 금해야 한다.
등등등
뭣이 겁나게 복잡하고 귀찮았다.

스킨과 로션으로 27년 세월을 살아 온!
없는 것도 너무 많고
있는 것은 너무 오래 되었고.
챙겨보니...... 27년 된 것들도 있었다.
마저 다 갖추지 못해 색 바르는 걸 포기 하거나 잊어버린!
특별한 날에는 있는 것 중에서 그냥 대충 칠하고 조카 결혼식에도 가고!
그 흔적들!
초라한지도 모르고 살았던 그 기억들!
딸도 없었으니
유행은 지났어도 때깔고운 분첩 하나 없었고,
딸이 없었으니
딸년 볼테기에 바르다가 말은 크림 한 방울도 없었다.
언니들은 연신 오래된 것은 아까워하지 말고 다 버리라는 주문만
수화기에 토해내고 계셨다.

그 어려운 망설임의 동조자가 필요했다.
공교롭게도 아들녀석이 얼굴이 예쁜 엄마를 원한 것이 아니라
정수리의 머리결이 갈라지지 않는 예쁜 엄마를 원했으니



<새언니, 뒤통수 머리결이 갈라지지 않는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하하하하하하하
하늘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할 나를 아시고
머리털하나는 백만불짜리를 주셨다고 했었다.
그런데 고생은 머리결도 푸석거리게 하고 갈라지게 했나보다.
<고모, 파마를 해야하는데요, 처음하면 뽀골이로 할머니 파마를 해 버릴지 모르니까 찍찍이를 가지고 가서 그 굵기로 해 달라고 해요>
참!
27년만의 파마가 새언니의 전화기를 불나게 했었다.
걱정이 되셨었나 보다.
다 늙어서야 예뻐지려는 막내 시누이가 대견스러웠는지
그 후로도 몇 번 전화가 연결되었다.
그리고 파마를 했다.
하하하하하하하!
사실 신혼 때는 2~3년에 한 번 머리를 잘랐었다.
한 번 자른 후 길어지면 잘랐으니 그게 2~3년 간격이었을 게다.
그런데......
그 머리를 매월 잘라야 하는 동기가 발생하였는데,
섬마을로 이사를 가서 살을 적에
한 달에 한 번 오시는 본당 신부님!
처녀적에,
큰오빠랑 새언니랑 조카들이랑 10년 동안 한 집에 살을 적에
큰오빠네 본당 주임신부님!
내 교적은 시골집에 있었으나 학교는 도시에서 다녔으니
활동하는 본당은 도시성당이었다.
그때 그 신부님이
한 달에 한 번 오시는 섬마을 공소의 본당 신부님!
10년만의 재회였다.
내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지!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면소재지의 미장원에 앉았다.
그리고 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런데 그 비용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때부터 가위를 들고
나 혼자서 내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오직 10년 만에 만나는 그 신부님께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솜씨가 늘기도 하였지만 머리털 하나는 백만불 짜리를 주셔서
잘라만 놓으면 단정하고 깔끔하고 예쁘게 보였다.
그런데 섬마을을 떠나 온지 16년이 지나서는
내아들에게 정수리가 예쁜 엄마로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비싼 파마를 하게 된 것이다.
아! 이것도 겁나게 귀찮은 일이었으니!
아이고 멋장이 되려다가 피곤해 지칠 판이다.



그런데........
최근 2~3년 동안 봄마다 듣는 말이 있다.
예뻐진다는 둥!
바람났냐는 둥!
성형외과 다녀 왔냐는 둥!
누구 좋아하는 연심이 생겼냐는 둥!
이상 쌉쑤룸허니 별로 맛없는 말을 봄이 되면
꼭 듣는다.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가을에 돌아 온 내 모습이 너무 까맣게 타져 있고
일에 지치다보니 표정이 경직되어 있고
의식없이 바삐살았으니 몸 동작이 이상한 것이다.
그러다가 겨울을 자고, 먹고, 쉬고, 마음까지 다스리고 나면
얼굴도 본 색이 나와 하얗게 되고
내 모습에 변화가 확실해 진다.
그러니 별로 맛없는 소리들을 벗님들께서는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올 해는 친구 덕에 화장품도 생기고
아들 덕에 파마까정 했으니
유년에 친정 아버지께서 막내딸을 품에 담고 다니시며 자랑 하시던!
미스 코리아가 된 기분이랄까?!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곧 산으로 가면
5일만에 깜둥이가 된다.
여섯달 동안 태운 검정은
돌아와서 넉달이 지나서야 완전히 벗겨진다.
봄이 되었으니 봄처녀는 아니어도 봄 아줌마는 된다.
히히히히히히히히히!
어흠흠! 켁켁! 컥컥! 아이고!


이렇듯이
27년을 잊고 살은 부분을 떠 올리는데도
여간 번거롭고 귀찮고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이 사순시기에
53년을 세상 안에서 살아 온 나의 망각과 나의 검정들을
벗겨낼 수 있을까?
벗겨내고 싶다.
그것이 벗겨지면 내 안의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사람의 심성은 쉽게
나의 변화를 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조건을 단다.
<네가 변하면 내가 화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네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 되어야 하는거고
그러면 상대방이 나에게 쌉쏘롬하고 어색한 발견을 일러 준다.
<어~! 예뻐지네?!>
나도 예뻐지고 싶으다.
이 사순 시기에 내 자신의 변화를 원한다.




삶은 억울함이 아니라
흐르는 물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을 뙤약볕에서 숯처럼 살아보지 않았다면
봄에 벗님들이 바라보는 눈빛을 어찌 느낄 수 있겠는가?!
넓은 마음을 갖고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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