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죽기 전에 부활하는 해골도 죽는다 [날마다 죄짓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06 조회수591 추천수0 반대(0) 신고


날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아마도 '죽기 전에 부활'한 해골인가 싶다. '해골이다'는 의미는
죽기 전에 부활한다는 거짓된 부활관을 받아들임이다 할 수 있다. 죽기 전에 부활한다면 부활된 생명이 있다는 것인데 그같은 거룩한 변모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해골이 되었다 하겠다.

죽음을 숭배하는 일은 인간 자신에게서 조차 숨겨야 했던 원죄의 상처인 것같다. 인간이 죽음에 직면하면 죽음을 숭배할 수 있다는 학자의 주장은 틀림없이 보인다. 영원한 생명의 낙원에서 쫓겨난 첫 인간에게 '죽음의 의미'는 어떠했을까.

죽음을 겪지 못했던 인간이 자신의 첫번째 죽음에서 자기 처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죽는 자보다 죽음을 지켜보던 인간 자신에게서 죽음을 성스럽게 여기는 인간의 이념을 심각하게 구상해 보아야 했을 것이다.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대적(적대감)으로 인간의 죽음을 숭배하기 시작했다고 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죽기 전의 부활'이다. 하느님의 생명에서 쫓겨난 인간에게 남은 것은 인간 자신의 죽음을 생명 보다도 더 성스럽게 여길 수 있는 정신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있을 수 없으며 죽은 후의 부활은 단지 상상일 뿐이며 차라리 하느님의 부활을 인간의 부활로 바꾸어야 했을 것은 지금의 현대이다. 인간의 부활은 죽은 다음의 부활이 아닌 죽기 전의 부활이다. 그리하여 죽음을 성스럽게 여기는 죽음의 숭배가 절정으로 다가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 자신의 마음 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의혹과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에서 보기가 힘들어 졌을 때에 첫 인간의 죽음에서 처럼 그도 죽음을 생명 보다 경이롭게 여겨야만 했을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아닌, 인간의 사랑이 세상에서 더 위대(고귀)하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죽은 후의 부활이라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는 제 마음을 닫아 버리고 그 자리에 대신할 수 있는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신 하느님의 부활에서 하느님을 빼어내고 부활만을 인간 자신에게 가져와서는 죽기 전의 부활로 변형되어져야 했을 것이다.

이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다고 결정내린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힘은 인간에게서 나온다는 것에 근거하여 정신의 힘을 지닌 인간 이념에서 추출해 내어졌다 하겠다. 죽은 후의 부활인 하느님의 생명이 아니라, 죽기 전의 부활인 인간의 생명을 세상에 뿌리내리고자 시도함이다.

인간은 어차피 죽기 마련인 절대적인 숙명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바라며 살기 보다는 죽기 전의 부활 논리로 죽음을 공경(숭배)한다면 죽음을 초월하는 인간 생명 인간에게는 분명한 부활이 된다고 확신하는 것이 더 진보되어졌다 믿는 것이다. 이념인 것이다.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며 진리에 대한 해설도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사람이 만드는게 아니다. 죽기 전에 부활한다고 거짓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죽기 전의 해골'일 뿐이다. 해골은 날마다 죄를 짓는게 두렵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해골 세상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되지 못한다. 인간은 결코 죄의 삯인 죽음을 성스럽게 변경할 수 없다.

죽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죽은 다음의 부활,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 뿐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 안에서 인간 죽음을 거룩하게 맞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날마다 죄짓고 살면 안 된다는 하느님의 마음이 있으신 것이다. (요한1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