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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담과 하와[1]/위대한 인간의 탄생[9]/창세기[2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07 조회수388 추천수0 반대(0) 신고

인간의 죄와 벌이 시작되었다.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간교하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아룸’이다.
아담과 이브는 뱀의 꾐에 빠지기 전에는
에덴에서 알몸의 상태로 하느님과 함께 생활했다.
이 ‘알몸’의 히브리말이 ‘아롬’이다.
성경저자는 이 ‘아룸과 아롬’을 의도적으로 접근시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뱀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번식력[가나안]과 정치력[이집트]의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바빌론의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주인공이 어렵사리 구한 불로초를 뱀이 훔쳐 먹는다.[주석 성경 참조]

그렇지만 뱀은 우리에게는 ‘징그럽다.’라고 할 정도로 저주의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가끔은 약골들에게 몸보신용으로 취급을 받아 남정네들의 구미를 돋우는 귀한 '탕’의 비싼 소재가 되어 이리저리 굴속으로 숨어 다니면서 쫒기는 수난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 성경저자는 두 단어를 왜 대비하려했을까?
‘알몸이기에 외형적으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아양 떠는 간교함일까?
아니면 알몸으로 아무 숨길 것 없이 거리낌 없는 순수 그 자체로
간교하지 않다.’는 것이지는 잘 모른다.
다만 인간과 뱀이 에덴에서 늘 하느님과 함께 한 창세기 그 시절에는
‘죄’라는 것을 잘 몰랐을 것이다.
선[善]이 지배하고 악[惡]이 없는 에덴이었으리라.

그렇게 그들은 거리낌이 없이 만났고 늘 함께 했으리라.
뱀도 지금처럼 배로 기어 다닌 것만은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서 사람들과 만나 손뼉 치며 웃고 노래 부르며
수다 떨며 동산을 안방처럼 놀았으리라.
 

어찌 뱀이란 영리한 동물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엔 누군가의 개입이 분명 있었으리라.
인간을 빼고 말다운 말을 하는 동물이 있다는 것은 아직 구체적으로 들어보질 못했다.

민수기 22장에 나귀가 주인 발라암한테 대꾸하는 대목이 있다.
그때엔 주님의 개입이 분명히 있었다.
주님께서는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이 가는 것을 보시고 진노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천사를 보내시어 나귀를 통해 발라암에게 세 번이나 경고를 주었다.
그렇지만 그는 주님의 경고를 알아채지 못하고 괜히 나귀만 못살게 굴었다.
이에 주님이 직접 개입하시어 발라암의 나귀의 입을 통해
발라암의 잘못을 깨우쳐 주셨다.

발라암과 나귀의 대화를 보면서 이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함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의 개입이 있어야했다.
전지전능하신 분의 개입이 없고는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에덴에서 여자와 뱀과의 관계에서도 대화는 불가능했으리라.
누군가의 개입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은 하늘과 땅을 완벽하게 그분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창조하셨다.
그분은 모든 창조물이 사람에게 복종하도록 하셨다.[계속]
[공지]3부 '위대한 인간의 탄생'의 1장 서언에 이어  
이번부터 2장 '아담과 하와'가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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