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외로움에 대한 처방 - 3.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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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3-07 | 조회수700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12.3.7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예레18,18-20 마태20,17-28
‘외로워서 사람이다.’ 어느 시인의 시 제목입니다. 외로워서 사람이요 사람이라 외롭습니다. 혼자 있든 함께 있든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 누구나의 실존적 체험이 외로움입니다.
“성당에서 행사 후 신자들이 다 떠났을 때 홀로 빈 방에 들어가는 신부님의 모습이 참 외롭고 쓸쓸해 보였어요. 우리는 집에 가면 따뜻한 가정이 있는데…”
“텅 빈 충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으면 신부 자격 없습니다. 텅 빈 방에서 주님과의 친교의 기도가 뒤따라야 합니다. 외로움은 하느님의 초대장이요, 주님과 함께 있을 때 텅 빈 외로움은 텅 빈 충만으로 바뀝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외로움에 대한 우선적 처방이 기도입니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날처럼 극심한 경쟁 풍토에다 공동체가 해체되는 현실에선 외로움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주변으로부터 이해도, 인정도 받지 못합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예레미야를 없앨 음모를 꾸미며, 복음의 예수님 제자들은 스승의 수난의 예고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리 욕심에 연연합니다.
“주님, 제 말씀을 귀담아 들어 주시고 제 원수들의 말을 들어보소서.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외로움은 물론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예레미야였습니다.
외로움 중에도 충만한 삶을 사셨음이 분명합니다. 시편의 기도가 텅 빈 외로움을 텅 빈 충만의 기쁨으로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몸은 당신 곁에 길손 이옵고, 나의 모든 조상처럼 나그네오이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집에서 푸르른 올리브 같이, 언제까지나 주님의 자비에 의탁하리라. 내 마음은 하느님 안에서 기뻐 춤추며, 나의 힘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높여지는 도다.”
이런 시편기도가 외로움의 텅 빈 내적 공간을 주님의 생명과 빛으로 가득 채웁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과정은 생각지 않고 결과부터 보장 받기를 원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자리 곁에 앉게 해달라는 그들 어머니의 청이 잘못되었음을 정중히 해명하시며 두 아들에게 답을 내려 주십니다. 우선 답을 하시기전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는가’ 묻습니다. ‘할 수 있다’고 답변하자 다음 결론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결과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역이기에
매일 미사 때 마다 주님의 잔을 마시고 주님의 성체를 모실 때 마다 우리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해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해야 되겠습니다.
더욱 그러합니다. 공동전례기도를 통한 우리 모두의 수행이 결국은 직간접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을 닮은 직통로는 섬기는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섬김의 삶에 충실할 때 하느님은 이에 맞갖은 결과로 축복해 주십니다.
외로움은 우리를 부르는 하느님의 초대장입니다.
이게 주님의 잔을 마시는 일입니다.
섬김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바로 이게 우리 믿는 이들의 외로움에 대한 유일한 처방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충실히 섬긴 우리를 섬기기 위해 말씀과 성체로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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