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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돌아온 둘째아들이 과연 행복했을까!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09 조회수553 추천수3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오랫동안 가슴에 묻고 살았던 괴로운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12년 전에 우연히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교우라고 밝힌 어느 아가씨가

울먹이면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자기는 열여섯 살에 가출해서 10년 동안

술집, 다방, 창녀촌을 전전하고 다니다가 고향청년과 결혼이 성사되기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서울의 좋은 직장에 착실히 다니고 있는 줄 아는 부모님과 그 사람에게

지금의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날 것이 분명한데

죄스러운 마음으로 과거를 숨긴 채, 영원히 남편을 기만하면서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할 수 있겠는가~~ 고민, 고민하다가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다.

 

죽기 전에 어릴 때 성당에 다니던 생각이 났고 ,아무신부님에게나 이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죽고 싶어서, 114에 전화를 해서 청주에 있는 아무 성당에 대어달라고 했더니

교환수가 그 많은 성당 중에 하필이면 내가 있는 성당번호를 알려주었대요.

“일단 만나자, 만나서 이야기 해보자.”

온갖 좋은 말을 다해 설득시켜 보았지만 그 처녀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며칠 뒤에 우연히 지방신문을 보았을 때 사회면에

‘결혼 비관 자살’ 이라고 하는 기사가 굵은 제목으로 나왔는데

자살한 내용을 읽어보니까 며칠 전에 전화했던 그 아가씨의 기사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괴로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제지만 내가 한 영혼을 구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느꼈고

그래서 깊이 묵상하게 된 것이 ‘죄의식’ 입니다.

 

죄의식이 그토록 한 영혼을 망가뜨릴 수 있는가!

죄의식에 얽매어 살 때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그러면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돌아온 둘째 아들이 행복했을까!

다시는 아버지 집을 기어나가지 않았을까~

 

수많은 영성가와 문학가들의 잉크를 흘리게 했던

복음 중의 복음이고, 설교가들의 단골주제인 ‘탕자의 비유’

다른 말로 ‘돌아온 아들’ 의 비유는 많은 보물덩어리가 묻혀 있습니다.

 

아버지의 관점에서 볼 수 있고, 큰아들의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돌아온 자기 아들의 관점에서 볼 수 있고 심지어는

억울하게 죽은 살찐 송아지의 관점에서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색다른 방향에서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돌아온 아들 그 이후’

 

이 둘째 아들을 끝까지 괴롭혔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오늘 복음을 읽어보면 분위기가 대략 짐작이 됩니다.

재산탕진하고 창녀에게 빠졌다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가 기쁘게 맞아주면서

가락지와 옷과 신발을 신겨주며 아들의 영예를 회복시켜 줍니다.

 

옷은 영예를 나타내고, 가락지는 권위를 나타내며

신발은 자유를 나타냅니다.

그 세 가지를 준다는 것은 ‘다시 내 아들로 만들겠다!’

 

그러나 뼈 빠지게 일하다 돌아온 큰아들은 아버지가 작은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여주는 모습을 보고 못마땅해서 투덜거리고

아버지는 큰 아들을 달래는 장면으로 이 복음은 끝이 납니다.

.

탕자가 돌아온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고 축하할 경사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감격과 축제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둘째 아들에게는 실제적인 현실이 닥칩니다.

 

작은 아들에게는 분명히 정신적인 열등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와 허물, 양심의 가책들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을 겁니다.

또 한편으로는 창녀한테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육신에 속해있던

옛 생활의 향수가 그를 괴롭혔을 겁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집안의 분위기도 분명히 적응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형의 싸늘한 눈초리였을 겁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탕자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바로 나의 문제,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둘째 아들이 세 가지의 벽을 넘지 못하면

또 다시 기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는 열등감, 죄의식입니다.

과거에 대한 그 열등감 때문에 괴롭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했던 죄, 허망하고 방탕하고, 교활하고

방자했던 죄, 그 허물 때문에 불행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낙태시켰던 죄 때문에 성사를 수십번 보고, 죄사함 받았다는 이야기를

수 십번 귀로 들었어도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나는 죄사함 받았는데 내가 죽인 아이는 어디에 가 있을까?

일 년에 몇 번씩 본당신부님이 낙태 이야기 할 때마다 고개를 못 쳐듭니다.

 

죄의식!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감히 아버지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영적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죄인입니다.

몸에 붙어 있는 검불을 떼어 내면 반대편에 검불이 또 붙습니다.

한번 뜨겁게 피정한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성인으로 살지 못 합니다.

총고해를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서 한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성사 볼일이 안 생기는 것, 아닙니다.

 

죄의식은 우리들의 몸뚱아리처럼 늘 따라다닙니다.

마귀는 영적 열등감, 죄의식을 가지고 우리를 지배합니다.

 

영적 열등감 이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 세상 어느 교회, 어느 종교도 공식적으로 죄사함을 받는 종교는 없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죄사함의 보증을 못 받습니다.

죄를 짓고 혼자 통곡을 하면서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하고, 죄사함 받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죄사함 받았다는 보증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사제의 입술을 통하여

감각적으로 우리 귀에다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네 죄를 사한다!’

분명히 얘기하십니다.

 

서울의 어느 본당의 총회장님이 계시는데

그 회장님은 50세 넘어서 천주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분은 정신과 의사이며 개신교에서 장로직분까지 받았습니다.

학회에 논문을 제출해야 되는데 논문 제목이 ‘가톨릭의 고해성사’ 였습니다.

 

자기가 개신교 신자이니 고해에 대해서 알 리가 없지요.

그래서 명동성당 상설고백소 앞에서 6개월 동안 조사해 보았습니다.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저 사람의 얼굴을 보니

저 앞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3개월은 치료해야 될 거야!

둘째 줄에 저 사람은 일 년을 치료해야 될 사람이야!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쪼끄만 골방에 들어갔다 10분 만에 나오는데

다들 천사가 되어 나오는 거야~

도대체 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길래 세상 다 산 것 같은 얼굴,

정신병자처럼 살던 사람이 저토록 환한 얼굴로 나올까!

 

개신교신자는 밝혀낼 길이 없어서 결국은 개종해서 6개월간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는데 한 달 후에 고해성사를 보라고 엽서가 날라 왔더래요.

‘형제님 첫 고해 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래서 준비를 하고 시간에 맞추어 고해소로 갔대요.

 

자기 직업은 사람 만나는 것이고, 그토록 많은 사람을 만난 자기도

고해소에 줄을 섰는데 차례가 다가오니까 가슴이 떨리기 시작하더래요.

드디어 앞에 들어갔던 사람이 나오면서 생전 처음 고백소라는

컴컴한 데를 들어갔더니 안쪽에 무릎 꿇는 데가 있고, 앞에는 천을 가려 놓았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성호를 긋고 세례 받고 이후에 지은 죄를 고백하는데 그 순간 깜짝 놀랐대요.

그 고백소 안에서 예수님을 만난 거예요.

그 순간 눈물 콧물이 터지면서 ‘엉엉’ 통곡을 하면서 고백을 했대요.

그리고 나올 때는 ‘아, 이것이 바로 치유의 성사구나!’

절대로 정신과 의사가 할 수 없는 일을, 개신교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고 계시는 구나!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고 하는 믿음이 없으면

고해소 안에서도 모고해, 거짓고해를 하게 됩니다.

내 죄가 진홍색처럼 붉은 죄도 눈처럼 하얗게 된다고 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을 때는

이 세상 어떤 죄, 어떤 죄의식으로부터도 해방이 됩니다.

그러나 이원적인 관계가 되면 어렵습니다.

 

탕자는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누가 나를 죽일 놈이라고 해도, 온 동네 사람들이 내가 지나 다닐 때마다

‘저 나쁜 놈, 저 자식 또 기어 나갈 거야!, 하더라도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 는 믿음만 있다면

탕자는 다시 집을 나가지 않을 겁니다.

 

두 번째 넘어야 될 산은 육신에 속해 있던 이 생활에 대한 유혹입니다.

인간이기에 하느님을 몰랐던 시절에 우상숭배하고 살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알콜중독자, 호색가 노름꾼이 쉽게 해방되지 못합니다.

 

알콜중독에서 해방되기 얼마나 어렵습니까?

도박하는 사람 오른 손가락 자르면 왼손으로, 양 손 자르면

발가락에 끼워서라도 합니다.

 

음란마귀가 들리면 전국팔도에 애인이 하나씩 있습니다.

성령세미나를 받고, ‘다시는 내 마누라 가슴 아프게 하지 않겠다!’

음란마귀로부터 벗어나려 해도 못을 빼어도 못자국이 남아 있듯이

옛날 생활로 자꾸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속, 육신 마귀 삼구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루가복은 4장 13절에

사탄이 예수님의 인성을 시험해 보면서 다음 기회를 노리고 갔다! 는 말이 나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까지 덤비다가 지고 돌아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놈입니다.

둘째 아들은 육에 속해 있던 옛 생활을 청산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아버지 집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넘어야 될 산은 형과 같은 싸늘한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돌아온 동생에게 싸늘하게 대하는 형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형이 다 틀렸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꾸준히 인내를 가지고 대하면 싸늘했던 형도 변할 겁니다.

 

주님을 만나러 갔던 자캐오는 군중이나 키 큰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기를 쓰고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과연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 집에 머무를 수 있을까!

아버지 집에 머무를 수 있으려면 세 가지를 극복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영적인 열등감, 이 영적인 열등감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세상 사람들이 다 나에게 돌을 던지고 ‘죽일 놈’ 이라고 하더라도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 그걸 믿어야 합니다.

두 번째 넘어야 될 산은 쾌락을 찾는 우리 몸뚱아리입니다.

세 번째 넘어야 될 것은 어려운 주변 환경, 주변의 싸늘한 주변의 시선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기도 하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오늘 우리들은 이 거룩한 땅에 왔습니다.

성지(聖地)는 말 그대로 'Holy Land' ‘거룩한 땅’ 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거룩한 땅은 거룩한 자만이 발을 디딜 수 있는데

여러분들 중에 거룩한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거룩한 사람은 하느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죄인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거룩한 땅을 밟을 수 있는가!

죗덩어리 인간이 거룩한 땅을 밟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러주시면 올 수 있습니다. ‘거기 한 번 가보자!’

그런 마음을 갖게 한 동기 자체가 성령께서 불러주신 겁니다.

 

여러분들 중에 여기 오게 된 동기는 다 다르지만

그러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오늘 여러분들, 이 자리에 앉혀놓으려고

하느님께서 성모님의 전구로 이 자리에 왔다는 것 명심하십시오.

 

부르심을 받고 왔다는 생각하는 것과

소풍 간다는 마음으로 왔다는 것과의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 명심하십시오.

 

불러주셨을 때는 분명히 주실 것이 있기 때문이요.

거룩한 땅에 발을 디디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성령께서는

치유의 은혜와, 구마의 은혜와, 믿음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이 거룩한 땅에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주님의 성체를 정성된 마음으로 영하도록 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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