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늘'에 계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10 조회수620 추천수10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사순 제3주일 - ‘하늘’에 계신

 


 

역사상 사랑의 마음을 담아낸 아주 유명한 표현 가운데 하나는 타지마할입니다. 타지마할은 39세에 아이를 낳다가 유명을 달리한 인도 여왕 뭄테츠 마할을 위한 무덤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사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2년 동안 궁정에서 음악과 연회를 모두 금지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온 세상이 기억할 수 있도록 기념비를 건축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강 근처에 있는 정원을 건축 장소로 선정했고,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가와 석공을 동원했으며, 귀한 건축 자재를 먼 곳에서 수입했다. 무려 20여 년에 걸친 공사 끝에 아름답고 정교한 건축물이 완공되었습니다. 타지마할이 없었다면, 여왕은 세상에서 곧 잊혀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남편이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준 덕분에 그녀는 유명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면 이렇게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이 눈 뜰 때부터 눈 감을 때까지 생각나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만나게 됩니다. 타지마할에서도 보듯이 ‘사랑’은 ‘기억’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면서 그 대상을 잊어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이사야서에서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 49, 14-15)

 

하느님만 우리를 기억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또한 하느님을 기억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되기 위해서, 또 그들을 당신 것으로 삼기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먼저 이스라엘 가운데 ‘성막’을 세우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이 성막이 바로 후대에 예루살렘에 세워질 성전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은 하느님이 거하시는 곳이기에 더러움이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아담의 죄로 인해 저주받게 된 죄의 상징인 ‘땅’에 거하시지 않고, 깨끗함의 상징인 ‘하늘’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산꼭대기에 올라야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전에서 더러움을 없애기 위해 행했던 상징적 행위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향’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보통 사람들이 임금 앞에 나올 때는 수많은 향을 거쳐서 나아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서민들은 잘 씻지 못하였기 때문에 임금이 그들을 만나주기 위해서는 그들 몸에서 나는 악취를 먼저 중화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계약의 궤가 모셔져있는 지성소의 휘장 밖 성소에서는 쉼 없이 향이 피워 올라야 했습니다. 사실 즈카리야도 이 일을 하러 들어갔다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는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이 장사하는 집’이 되어버렸다고 하시며 채찍을 만들어 장사꾼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내십니다. 여기서 장사하는 집이란 사람들이 더 이상 아버지를 기억하거나 만나 기도하지 않고 세상의 번잡한 것들로 정신이 빼앗겨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딴 생각에 잠기면 자연적으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됩니다. 다른 것에 신경 쓰면 정작 듣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잊혀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정신을 끄는 것들이 오늘 장사꾼으로 비유된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교황 이노첸시우스 4세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청의 발코니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중세 때의 교회의 부와 권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았고 낮은 위치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마침 교황청으로 돈 주머니가 수송되어 오는 행렬이 있었습니다. 교황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저기 봐요. 이제는 ‘금과 은은 내게 없노라’고 교회가 말하던 그런 시대는 지나갔소.”

이 말은 성전에서 교회의 수장이었던 베드로와 함께 요한이 지나갈 때 앉은뱅이가 자선을 청하자, 베드로가 대답했던 말을 인용해 그 때처럼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는 뜻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토마스 성인이 이를 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앉은뱅이더러 ‘일어나 걸어라.’하고 교회가 말할 수 있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부자가 되어가니 교회는 돈에 정신이 팔려 그리스도를 잊어가고 있음을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탄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정신을 산란하게 하여 그리스도를 잊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채찍으로 쳐서 쫓아낼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전은 교회뿐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다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신 그리스도를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신 말씀을 따라 매일미사에서, 특별히 성체성사 때마다 그 분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성전임을 알면서도 살아가면서 그 분을 잊고 살 때가 참 많습니다. 풍랑에 배가 가라앉을 정도가 돼서야 예수님을 깨웠던 제자들처럼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계신지 신경을 안 쓰고 살 때가 신경을 쓰고 사는 시간보다 많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질 때에야 그분을 찾기도 합니다.

 

저도 성전이었다가 장사하는 집이 되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봉성체 할 때였습니다. 성탄 전이라 추웠지만 성탄 선물을 사들고 성당에 나올 수 없는 처지의 아프신 신자분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봉성체 다니는 사제는 목에 봉성체 성합을 걸고 다니기에 ‘움직이는 성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왠지 그리스도를 전해준다는 우쭐함에 다른 곳을 쳐다보며 성합을 꺼내다가 성합을 놓쳐 성합이 방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성합이 열려 성체가 여기저기로 떨어졌습니다. 저의 마음에 장사꾼들이 너무 많이 있었고 그런 것들에 정신이 팔려 정작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몸엔 주위를 덜 기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그리스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 뚫려 심장에서 피와 물이 나왔을 때,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위아래로 찢어졌다는 증언은 그리스도의 몸과 예루살렘 성전이 그리스도의 표징이었음을 증명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성전을 정화하시는 모습이 곧 당신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당신 자신에게 하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어떠한 죄도 아버지의 성전인 당신 자신을 더럽히지 못하게 열정적으로 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전에 대한 어떠한 ‘열정’이 있습니까? 혹시 적당히 죄를 지으며 성전을 더럽히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아버지의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열정이 폭력까지 쓰게 만들었다면, 나도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분의 집에 대한 그런 열정이 조금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단식과 극기 같은 것은 이렇게 그 분을 더 기억하기 위해 내 자신에게 폭력을 써서 장사꾼을 몰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배가 부르면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 것을 더 찾게 되어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가 담긴 병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붓고 자신의 머리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이제는 값비싼 향유가 아닌 그리스도만을 생각하겠다는 결심입니다. 향유 옥합이 깨어지고 값비싼 나르드 향유가 흘러버릴 때 여인의 성전은 세상 것으로부터 깨끗이 청소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녀의 행동이 길이길이 기억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기억해 주십니다. 이것이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사랑과 일치의 신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만을 생각하게 될 때야만 그 분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고 내가 그 분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보화가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항상 있습니까?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