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이 중요하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가득 차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해 주시는 복음을 귀담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어떤 말씀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듣고 싶은 만큼 듣고, 보고 싶은 만큼만 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신앙촌에 사는 분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은 나자렛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러한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나를 비추어보기보다는 나의 잣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내 입맛에 맞게 선택하고 맞지 않으면 흘려버립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이고 능력이 넘치지만 그 능력을 간과하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하느님에 대한 알량한 지식과 편견이 그분과의 만남을 가로막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안다는 것이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겸손을 청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부드러운 마음을 달라고 청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돌같이 강한 마음을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길 기원합니다.
회당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무지를 일깨워 주실 때 오히려 화를 내고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자기들의 기득권과 자존심을 지키려 취한 방법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기득권을 포기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면 더 큰 존경과 권위가 살아날 것인데 눈앞의 이익을 위해 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니 첫발이 중요합니다. 선을 택할 수 있는 첫 발이 그의 미래를 열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습니다.”(루카4,30) 결코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요한1,5-9).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실과 타협하고 싶은 충동을 받습니다. 그리하면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나만 바보처럼 손해를 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적당히 눈 감으면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과 배척,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당신의 가실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넘어지시고 또 일어서시는 십자가 길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 대한 사랑을 일깨웁니다. 진정 “사랑은 크면 클수록 행동치 않을 수 없고, 진실 될수록 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박병해 신부). 사랑합니다.
사순절에 영혼의 정화를 위해 고해성사를 봐야 하겠습니다.
성지에 가서 고해 성사를 보고 온 한 신자가 본당 친구들에게
매우 친절한 고해 신부님을 만났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아주 친절하셨어. 고해성사 중에 혼내지도 않으시고,
캐묻지도 않으셨어. 훈계도 없으시고....
다만 노래로 하는 기도소리에 신부님이 주시는 보속을 잘 들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가 알아서 주님의 기도 한 번을 바쳤어.
다음에도 그 성지에 가서 성사를 봐야겠어.”
친구들이 부러워하면서 “ 그 고해신부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
우리도 한번 찾아가고 싶은데!”하고 말했습니다.
“부 신부님이라고 알고 있어. 내가 자세히 봐 뒀지.
고해소 문패에 ‘고해신부 : 부재중’이라고 돼 있었거든!”
주님 빛으로 / Joseph M.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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