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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편견, 선입견의 치유 - 3.1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12 조회수622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2.3.12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열왕 하5,1-15ㄷ 루카4,24ㄴ-30

 

 

 

 

 




편견, 선입견의 치유

 

 

 

 

 



몰라서 판단이지 알면 판단하지 않습니다.

몰라서 편견, 선입견이지 알면 알수록 편견과 선입견도 사라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전부를 보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기의 한계와 부족을 알수록 남 판단하지도 않고

편견과 선입견에서 점차 해방되어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나 편견과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지요.

인간의 한계이자

치유 받아야 할 원죄로 인해 생긴 마음의 병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좌절감이 밴 이 말씀은 고향 사람들의 냉대에 대한 반응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에 눈이 가려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딱한 고향 사람들은 바로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안타깝지만 이런 인간 현실을 받아 드리고

좌절함 없이 정면 돌파하여 꿋꿋이 제 길을 가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와는 대조적인 게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와 시리아 사람 나만입니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나아만이 나병이 없었다면 엘리사도 하느님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겸손을 통해 참 나를, 하느님을 알 은혜도 입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화위복이라 나병이 있었기에

한없이 겸손해지고 깊어진 나아만의 삶임을 봅니다.


나아만의 방문 소식에 질겁했던 이스라엘 임금과는 달리

엘리사의 처신은 지극히 침착하고 의연합니다.


마치

고향 사람들에 냉대의 반응에 의연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 질 것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제출한 믿음의 시험입니다.


나름대로 선입견을 갖고 특별한 조치를 기대했는데

너무 평범한 조치에 화가 난 나아만의 처지가 참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열려있는 사람,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웃의 말에 꽉 닫힌 우이독경, 옹고집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하들의 만류에 엘리사의 말에 그대로 믿음으로 순종했으며

시험은 통과되었고 병은 나았습니다.

다음 장면 묘사가 그림처럼 선명합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믿음의 눈만 열리면 주변의 모두가 요르단 강물입니다.

은총의 도구, 구원의 도구입니다.

구원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평범한 것들 모두가 은총의 선물, 치유의 도구임을 깨닫습니다.


매일의 일곱 번 시간경이 은총의 요르단강물에 영육을 담그는 시간이요,

날마다 끊임없이 흐르는 미사의 강이

은총의 요르단 강되어 우리를 치유합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 앞에서

활짝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을 고백하는 나아만입니다.


육신의 나병 치유와 더불어 하느님을 만남으로 영혼이 치유된,

전인적 구원을 받은 나아만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만남으로 영혼이 치유되어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면 육신도 자연스럽게 치유되기 마련입니다.

 


엘리사를 통해 나아만의 나병을 치유해 주신 주님은

당신을 믿는 우리 모두를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치유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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