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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결국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12 조회수821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사순 제3주간 화요일 -
결국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란 프로에서 김창옥 교수가 강연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김창옥 교수는 말을 매우 재미있고 조리 있게 잘하는 분입니다. 그 분에게 한번은 매우 경직되어 보이는 여성이 찾아와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매우 도도하면서도 얼어있었고 잘난 척 하는 말투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한 마디만 하면 울어버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수는 그 분의 직업을 물어보았습니다. 직업은 ‘심리치료사’라고 하였습니다. 교수님은 그 분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몇 주 간의 대화 끝에 그 여성은 남편에게도 하지 않은 말을 하겠다고 하고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억제해가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실 저는 제 안에 12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잠실 쪽에 살았습니다. 저는 12살 남동생은 9살이었습니다. 꿈에 귀신이 쫓아와서 저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한강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귀신을 피해 한강에 빠졌지만, 허리춤까지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잡아 끌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집안 식구들이 물놀이를 갔을 때 9살 남동생이 물에 빠져 익사하였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그 책임이 나 때문이라고 흐르기 시작했고,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생 대신 제가 죽었어야 했는데...”

그 이후로 마음은 그대로 12살로 남아있고 몸과 사회적 역할만 자라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어른-아이(adult-child)’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수님은 그 여성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지금 울음을 참고 있는데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꼭 선생님 안에 있는 12살짜리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한 번 꼭 안아주십시오.”

며칠 뒤에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젠 수영장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사람이 독화살을 맞으면 화살을 빨리 빼고 독도 뽑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독화살을 움켜쥐며 누가 쏘았는지부터 먼저 찾는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독은 온 몸에 퍼져나갑니다.

오늘 베드로도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하루에 7번만 용서하면 되느냐고 묻습니다. 정말 열이 받은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못된 종의 비유를 들며 남이 아니라 자신 먼저 바라보아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일만 탈렌트는 수조원에 해당함으로 인간이 꾸어줄 수 있는 액수는 아닙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거저 사해주신 인간의 죗값, 즉 그리스도의 핏값입니다. 이렇게 죄를 용서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 즉 수백만 원 빚진 사람을 탕감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자비한 종은 결국 무자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 비유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끊임없이 용서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세 번씩이나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한대로 고통 받는 그 분 앞에서 그 분을 세 번이나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해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가 극복해야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자신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전부터 남을 용서해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자비로운 마음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배반한 이 큰 죄를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용서하는 법을 가르치신 가장 큰 목적은 바로 미래에 자신을 용서하는 능력을 키워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다는 용서할 줄 모르는 인물이었기에 자신도 용서하지 못하고 그래서 아무리 용서를 해 주려고 해도 스스로 영원한 어둠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남에게 한 무자비한 마음은 결국 자신을 심판할 때도 그대로 적용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유다에게 가졌던 마음처럼 끝까지 우리를 살리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 분은 심판자이시기 이전에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자신을 영원히 심판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될 것입니다. 무자비하게 살아온 사람은 이웃들에게 해 온 것이 있어서, 양심상 하느님 앞에서 자신만 용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처럼 스스로 어둠을 찾아 들어가 버릴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하느님을 피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기 이전입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죄인이라 심판한 것이고, 결국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에 에덴동산에서 떠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웃을 용서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더 어려운지 모를 일입니다. 마지막 날 내가 저지른 모든 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내가 스스로 용서할 수 있기 위하여 먼저 하루에도 수없이 이웃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도록 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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